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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 Oct 30. 2022

예술은 위한 희생은 정당한가<서편제>

답답함과 승화를 같이 안고 있는 뮤지컬 서편제


마지막 심청가를 듣기 위해 달려갔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는, 반대로 말하면 그 앞부분이 여러모로 견디기 힘든 공연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완성을 소원하는 아버지와 그에 반항하는 아들, 그 사이에서 남겨진 딸. 

자식들이 갔으면 하는 길을 명확히 정해놓은 부모치고 강압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강압이 지금 시대에는 아동학대로 비춰지고 있으니 이 공연이 불편하게 다가오는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이유로 모차르트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방식을 따라 아이들과 방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동학대이고,

자신을 떠나갈까 하는 두려움과 진정한 예술가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딸의 눈을 멀게 만든 유봉의 행동이 학대를 넘은 상해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유봉이 부르고 있는 '시간이 가면' 이란 변명아닌 변명이 얼마나 병신같은 소리로 들리던지... 

시간이 지나 미움이 스러지고 그 한이 허무로 남아버릴 때 얻게 되는 예술이 과연 예술인 것인가.

타인을 희생해 예술을 얻고 그런 예술을 우러러보고 칭송하는 사람들을 모두 바보취급 하고자 하는 유봉의 어처구니 없는 자만심이 아니던가



이 극의 주인공은 사실 좀 애매하다. 


송화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적어도 나에게는 송화의 주체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처음엔 아버지를 따라 소리를 하고 싶다가도,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삭히고 잔잔하게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꿋꿋이 자신의 예술을 지켜가는 모습이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정해져버린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져 많이 아쉽다. 이 모습이 그 당시 바라던 예술인의 상이요 여성의 상이라면.. 더이상의 할 말은 없다.


나름 자신의 주장이 강했던 동호와 유봉을 본다면, 동호는 임팩트가 없고 유봉은 설득력이 없다.

동호의 갈등은 어린 나이의 치기어린 반항심으로 그려져 버리고, 유봉의 모습은.. 그냥 이기심에 미친 인간이 되어버려 과연 이자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원작이 이러니 영화로 나왔을 땐 참 좋은 영화지만, 뮤지컬로 만들었을때는 솔직한 마음으로 지루하다.

하지만 원래 비워지는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이고, 자신을 비우며 길에서 살아간 소리꾼의 이야기여서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할 것 같지는 않다. 송화와 동호, 유봉에게 집중되고 있는 이 이야기가 마치 우리의 삶의 모습같다. 타인에게 맞추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집중해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



타인이 보았을 때 각자의 캐릭터의 삶이 행복한것 같은가? 라고 묻는다면 과연 이 중에 누가 행복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송화의 인생은 처음에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뒤로 자신의 방향을 선택한 것은 송화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동호와 선택이 달랐다 하더라도 어느 누가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어떤 것에 무게를 두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유봉이 만들려 했던 두 남매의 삶에 대해서는 유봉이 너무 폭력적이라 생각했지만, 송화와 동호 두 사람이 '이게 내 갈 길이야'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으로써 응원해 주고 싶다.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선택을 응원한다.

그것이 이르던, 늦던 그 사람의 최선의 선택이었고 가장 빠른 시간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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