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RIMI Oct 12. 2021

실패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용기

"하하하하.."
독일 사람들을 따라 같이 웃어보지만 그 웃음의 이유를 모를 때도 참 많았다.
독일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이해한 척,
다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일 때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쌓인 영어 단어 덕분에 어떤 문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좌절한 적은 손에 꼽히는 것 같다. 하지만 독일어는 차원이 달랐다. 모르는 단어가 줄줄이 나오거나 아예 예상 못한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하얀 안개로 덮이듯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관공서, 은행, 병원, 유치원 등 각 장소에 따른 낯선 독일어 단어를 접하거나 혹은 두 명 이상의 독일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대화의 주제를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적시적소에 알맞은 대화를 집어넣어야 하는 시험처럼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우왕좌왕하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왜 그리도 그 순간들이 떠오르는지 후회와 자책감만 한없이 밀려들었다. 대화에 실패한 날이나 작은 실수를 연달아한 날이면, 마치 세상을 잃은 것처럼 풀이 죽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자존심이 무너지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만 같은 수치스러움에 몸서리를 쳤다. 정확한 내용을 알아가는 것보다 무시당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영어로 설명해드릴까요?"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었다.

 나도 독일어를 잘할  있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독일어로 해주세요." 라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문법 하나, 발음 하나 실수하거나 틀릴 때마다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나의 서툰 독일어를 알아듣기 위해  기울여주는 좋은 독일 친구들도 많았지만 실수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그들의 호의를 슬쩍 밀어내고 벽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틀릴 일도 없었다. 만나지 않으면  못할 일도 없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모를   깊은 곳은 여전히 불편하게 아려왔다.



언니 그림이 마음에 든대요!

 친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은 당시 베를린에서 핫한 소품샵  문구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림을 샵의 사장님께 보여드렸다고 했다. 다행히 사장님도  그림이 마음에 드셨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핫하다는 문구점에  그림이 인쇄된 엽서와 카드가 진열되었다. 하늘을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모든 일이   풀릴 것만 같았고 사람들이 모두  그림을 사랑해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입점에 성공한 나의 그림들은 아쉽게도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주가 지나고 미술을 전공하던  동생이 문구점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사실 나는 그곳으로 섣불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같다. 판매 실적 하나 없는 작가로서 사장님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가게에 여전히 가득 쌓여있을 나의 그림들과 함께 나도 '실패자' 낙인이 찍혀 남겨질 것만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향한 그곳에서 진열대 가득 쌓여있는 나의 그림들을 보게 되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직 많이 팔리지가 않았다.' 유감을 표했다. '괜찮아요'라고 애써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으로 자취를 감추고 싶었다. 숨어버리고 싶었다.  이상 나의 그림을 사랑스레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평가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잔인한 일이었으며 실패의 쓴맛은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그리고 세상은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끄러워졌다. 유럽 전역이 비상에 걸리고 록다운이 시작되면서 아이는 또한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라는 구차한 이유를 내세우며 절대 실패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그것은 바로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이었다. 매우 심플했고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모습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 엄마, 내가  유니콘이랑 공주님 성만 그리는  알아?" 당연히  가지를 가장 좋아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사실 다른 것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그리는  몰라서 내가  그리는 유니콘이랑 공주님 성만 그리는 거야.

다른    그리니까 이상할  같아서  그리는 거야.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맨날 새로운  그려. 나는  그리는데..."

그 사실이 분했는지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런 아이의 속마음이 나에게는 꽤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어느 누구도 아이의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망칠 것만 같아서, 새로운 것들을 그리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문득 나와 겹쳐 보였다. 엄마로서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 숨겨보려 부단히 노력했건만, 나의 삶을 바라본 아이는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앞으로 엄마랑 같이 새로운 것들 그려보자. 그러면   있을 거야."

적당히 둘러대며 달래 보았지만 마음속 깊이 쌓인 것이 터져버린 아이를 달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겨우 진정시켜 유치원에 보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사람들의 인정과 시선에 갇혀 무엇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미웠다. 어린 시절, 엄격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장녀로 살아오면서 실패와 실수는 용납될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달 볶기 시작했고  안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만족감 대신 누군가로부터 받는 칭찬과 비판에 예민해졌다. 내가 바라보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타인 앞에서의 인정과 평가로 존재의 가치가 결정됐다. 그런 방식이 싫으면서도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벗어나야만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바뀌어야 한다 굳게 마음먹었다.



실패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약 3개월 동안 아이와 버릇처럼 외치는 구호이다. 처음에는 아이도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엄마의 완벽함 속에서 엄마의 눈치를 보며 굳어있던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아이가 실수했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윽박지르고 큰 소리로 혼냈던 과거를 돌아보며 절대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실수할 때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아이와 함께 "실패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를 주문처럼 외쳤다.

 

 그리고 아이는 놀랍게도 언제부턴가 유치원에서 새로운 것들을 그려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과 하늘,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멋들어지게 그려왔는데 선생님들까지 칭찬할 만큼 황홀한 그림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가 변하듯 나도 함께 변화되기 시작했다. 실패와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 누군가의 칭찬이 없어도 스스로 잘했다 토닥일  있는 힘이 길러졌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니, 오히려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다. 독일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는 부끄럽고 민망할지언정 한번  묻는 용기도 생겼다. 때로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때도 있지만,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한  고개를 끄덕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생각하니 되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괜찮다'라는 말만큼 따스한 말이 있을까?

 빵을 태우고 좌절하던 때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을 , 혹은 유난히 독일어가 되지 않아 괴로운 날이든 여행  지갑을 도둑맞아 절망했던 순간조차도 '괜찮다'라는  한마디의 힘은 참으로 위대했다.   한마디는, 벼랑 끝까지 몰려  발짝만  가면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던 불안한 마음을 순식간에 안전한 잔디밭 위로 건져 올렸다.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심지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를 평가할 자격은 없다. 사람은 원래 실수투성이다.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좋지만 실패에 대한 자책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어떤 일이든 시작조차 못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완벽하게 굳어 멈춰있는 삶보다 나사   풀고 삐걱거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감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다, 물론 실수해도 괜찮다. 괜찮다, 진짜  괜찮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