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남미, 너와 나를 담는 여행길 ]
긴 비행 끝에 브라질 리우에 도착했을 때다. 부푼 마음을 안고 도착한 리우 갈리앙 공항은 온실같이 후덥지근하고 습했다. 이제부터 나의 미션은 호스텔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때부터 오는 길에 검색하여 알게 된 호스텔에 가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새로운 것이 주는 신선함보다는 낯선 것이 주는 두려움이 더 크게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각종 사건사고가 내게 일어날 것만 같았고 그 덕분에 주변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기에 바빴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그 두려움의 실체를 직접 마주한 순간, 나는 어미 잃은 새끼처럼 갈팡질팡하며 겉으로는 사기당하지 않기 위해 태연한 척하느라 코 끝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카드복제가 빈번히 일어나니 공항 atm도 의심해 봐야 한다는 정보, 호객꾼을 믿고 아무 택시나 타고 가다가는 강도 택시를 탈 수도 있다는 정보, 친절히 접근하며 한국말을 쓰면서 신뢰를 준 뒤 돈을 가져가는 사기꾼이 공항을 배회하고 있다는 정보. 이런 정보들은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그들에게 나는 갓 여행을 시작한 동양인 왕초보 여행자 신분이었다. 어떤 분야에서의 왕초보가 아니었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서툴렀으니까. 내 앞에 있는 모든 것들은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 택시나 타고 공항을 나설 용기가 없던 나는 결국 제일 비싸지만 가장 안전해 보였던 공항 택시를 탔다. 버스를 잘 찾아서 갈아타기만 하면 5배는 넘게 아낄 수 있는 돈을 서슴없이 내면서 말이다.
모든 것이 그러했다. 오는 비행기에서 자리 번호를 잘못 봐서 다른 손님과 좌석이 겹치는 해프닝을 겪기도 하고, 처음 들어간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같은 방을 쓰는 각 국적의 외국인들을 경계하고, 당장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서 현지 식당이나 장보는 것은 제쳐두고 제일 만만한 맥도널드를 찾아 나서고, 그러다 길을 잃어버려 숙소를 한참 찾아 헤매기도 하고,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몰라 내 눈앞에 떡하니 써져있는 화장실을 못 찾고, 어두워진 밤에는 가까운 구멍가게조차 나갈 엄두를 못 내고, 혼자는 무서운데 동행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고 싶은 곳은 어떻게 가야 할지도 막막하고, 꼴에 자존심은 있어 이것저것 막 물어보지도 못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잘 도착했냐 어떠냐라고 물어보면 너무나도 해맑게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은 힘들었고, 걱정할까 봐 힘든 티를 낼 수 없어 그게 또 힘들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돼서 집에 가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만 들고, 앞으로 수개월은 어떻게 보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단순히 휴양을 즐기고 쾌락을 위한 여행을 주제로 한 건 아니었지만 힘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항상 익숙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물을 사러 나가는 것조차도 새로웠던 그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사소한 실패들을 거듭해 터득한 방법들을 통해 작은 것들을 하나 둘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어느새 나는 남미 여행을 출발하기 전 숱하게 찾아보고 듣던 위험한 정보들에 집중하기보다는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새로운 것들. 이를테면 아름다운 풍경, 주변 사람들, 맛난 음식들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의 친절함을 경계 없이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헤매던 길들이 조금씩 눈에 익게 되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골목의 낙서들을 사진에 담고,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겼다.
막상 겪고 보니 여행을 오기 전 가졌던 두려움의 실체는 생각보다 작았고 심지어 허구의 것이기도 했다. 물론 각종 사건사고는 주변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었지만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몇 가지만 조심하면 충분히 안전할 수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가진 편견 때문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지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보고 싶었던 것만 보려 했기에 사람들의 따스함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리석은 태도였다.
처음이라는 건 당연히 미숙하고 많이 혼동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사람은 점차 적응을 하는 동물이다. 처음이라 서툴던 것도 어느새 손에 익고 방법을 알게 되며 요령을 터득한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 어떤 고수도 이 처음을 겪지 않고서는 고수의 길에 들어설 수 없다. 결국은 시작이 필요하다. 일단 저질러 보는 용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 말이다. 남들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세상은 무궁무진하게 넓고 우리는 너무나도 한정된 사회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한없이 작은 존재이고, 생각보다 남들은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신경 쓴다고 하더라도 그저 증명해 보이면 되는 거다.
그렇게 경험하다 보면 어느새 떨어졌던 자신감은 더 단단히 붙어 나를 견고하게 하고, 생각보다 걱정했던 것이 별 거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걷고 말하는 것도 아기 때부터 차근차근 위대한 도전을 거쳐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명심하자. 우리는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강해지고 있다. 일단 시작하는 것. 저질러보는 용기. 그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서툴러도 낯설어도 충분히 괜찮은 이유다.
그렇다고 내가 자신 없고 못하는 것들을 마구 도전하라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내가 꼭 하고 싶던 것들에 대해서 나 자신을 믿고 용기 있는 첫 발걸음을 내딛자는 것이다. 그렇게 도전하다 보면 그 길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또 다른 도전 욕구를 불태우기도 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게 되는 지혜를 배우고, 자신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도전해야 할 합당할 이유가 있다면 기꺼이 나아갈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중에는 서슴없이 낯선이 와 금세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장 싸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잘 찾고, 흥정을 생활화하여 바가지 당하는 일도 없게 하고, 이것저것 요리도 싸고 푸짐하게 해 먹을 줄 아는 베테랑 여행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 단계를 향해 물론 나아가는 중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