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위대한 열쇠.

[ #3. 남미, 너와 나를 담는 여행길 ]

by 이영훈


처음 보는 개에게 무작정 다가가 손을 흔들어 보이면 개는 공격하는 줄 알고 경계한다고 한다. 내가 아무리 호의를 지니고 다가간다고 한들.


지상낙원 같은 이과수 폭포를 담으러 가기 전 아르헨티나 국경 쪽 작은 마을에 있을 때였다. 순박한 느낌이 나는 동네에서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혼자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바닥이 흙길인 데다가 양옆으로 줄 서 있는 나무들의 내음이 온몸으로 전해져 간질거릴 만큼 싱그러움을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커먼 무언가가 내 등 뒤로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버려진 개 한 마리였다. 큰 덩치와 너무 까매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눈과 코가 보이지 않던 모양새와는 다르게 내 뒤를 어느새 졸졸 따라오고 있던 귀여운 녀석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개에게 다가가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꼬리를 당장이라도 흔들며 내게 올 것 같던 그 녀석은 내 생각과는 달리 그 순간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내가 놀랐고, 그 개는 나의 그런 모습에 더더욱 놀라 아주 멀리도 줄행랑을 치는 것이 아닌가.


남미에선 크고 작은 개들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었다.


아차 싶었다. '처음부터 손을 흔들어 보이지 말고 멀리서 지켜볼걸'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빠르게 멀어져 가는 그 개를 보면서 마치 그 모습이 그 당시의 내 모습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흠칫한 것이다.

개가 잘못하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내가 개한테 느낀 섭섭함이 내가 이 곳 사람들에게 준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편견으로 인해 지레 겁부터 먹어 그들의 친절을 보지 못하고 피하기 급급했던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에 그 개처럼 보이진 않았을지 반성하게 되었다. 단지 전해 들은 것, 외적인 모습에 의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선입견을 가지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내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 두렵더라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 사진을 찍고 있자 하교길 여학생들이 우르르 내게 다가와서 사진을 더 요청했다. 연예인이 된 것 같은 으쓱함에 광대 승천.


여행을 하면서 그러한 다짐은 점점 더 확신에 찼다.

브라질 카니발 삼바축제 기간 라파 거리를 늦은 밤 배회하다가 길을 찾기 위해 폰을 꺼내 이동 중이면 다가오는 건 소매치기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폰을 들고 있으면 위험하다며, 길을 찾는 거라면 대신 알려줄 테니 믿고 따라오라던 내 또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쿠스코 광장 길바닥에 앉아서 사람 구경 중인 나를 둘러싼 건 사기꾼들이 아니었다. 내가 어찌 한국인인걸 알고 '사랑해요'라는 멘트를 날리며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을 찍어달라 하고 안아준 요조숙녀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칠레 깔라마 어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때 내 앞에 불쑥 나타나 말을 건 사람은 나한테 뭘 요구하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서로의 말동무가 되어주자며, 함께 식사를 하며 내 앞에서 가족 얘기에 눈물을 흘린 한 가장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와 함께한 저녁식사.


어릴 때부터 처음 보는 사람은 낯을 가리고 사람 사귀기를 쉬워하지 않던 나는 여행이 지날수록 작지만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점차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쉽게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그런 인연들이 하나 둘 쌓여가는 느낌은 정말이지 신선하고 좋았다. 그중에는 단지 스치는 인연이고 연락처조차 모르는 친구도 많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온전히 그 순간의 감정에 취해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는 사실이 아닐까.



물론 낯선 땅에서 모든 것에 예의를 주시하고 경계하는 건 분명 필요한 태도이다. 하지만 내가 점점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수록 마음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우리들은 생각보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를 경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항상 흔히들 북쪽과 남쪽 중 어디서 왔냐고 질문을 해왔고 장난으로 북쪽에서 왔으며 총도 많이 쏴보았다고 이야기하면 정말 곧이 곧대로 내 말을 믿으며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라고 물어보곤 했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호기심에 어려 대놓고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런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단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사람을 잘 믿는 순진한 바보가 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더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포용력을 배우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여행객이라곤 나밖에 없던 숙소이자 가정집에서 만난 아이.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껍데기를 벗고 그들과 마주한 다음,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단계는 더욱 쉬웠다. 항시 그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이나 주목을 끌만한 물건이나 외적인 요소가 있다면 물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도 그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름 아닌 '미소'였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서로를 느낄 수 있었고, 수많은 미사여구보다도 더 많은 마음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여행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 미소가 아닐까 싶었다. 먼저 미소를 건네 온다면 나도 그저 웃어 보이면 전부였다. 공감은 이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웃어 보이면 저 먼 땅에 홀로 서있는 그 상황이 불안하다가도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눈이 마주치면 그냥 방긋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심을 전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웃어 보여도, 그 미소에 상대방이 응답해 주지 않아도, 그래도 좋은 것이 미소였다. 내가 웃었다고 그들이 웃어줘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고, 못 웃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후회는 그들의 몫이니. 어쩌면 내가 먼저 웃은 것에 대한 보답을 받고자 한 미소라면 미소가 돌아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고.


카메라를 보고 먼저 포즈를 취해주던 해맑은 아이들.


이 아름다운 덕목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냥 웃는 것이 전부다. 이쁘게 웃어 보일 필요도 없다. 그냥 나답게 웃으면 된다. 활짝.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좀 느끼한들 어때. 좀 바보 같아 보이면 어때. 쑥스러우면 어때.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기만 한데.



한눈에 반한 다는 건 절대 안 믿는 내가 어쩌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믿게 된 것도, 다른 맛집을 두고도 항상 바다 앞 포장마차에 석양이 질 때쯤 찾아가 같은 음식을 먹고 손 흔들며 내일 또 오겠다 약속했던 것도, 마리화나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벽화 앞 길바닥에 앉아 별 것도 아닌 걸로 시시콜콜 떠들던 것도 다 그곳에 친구들의 미소가 고스란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내 가슴에 우리만 알고 있는 그 미소 가득한 얼굴들이 있다. 아주 매혹적이었고, 포근했고, 순수했던.


코파카바나의 노을을 보면 포근했던 너의 미소가 오버랩된다.


위대한 자연환경이 좋아서 찾게 됐던 그곳 남미에서 또 다른 위대한걸 가슴에 담아왔다. 인구가 70억이 넘는 지구에서 사이에 아무것도 없던 우리가 서로에게 특별하게 추억되도록 만들어준 그 미소 말이다. 마음이 답답하고 굳어있을 때 이 미소를 꺼내보어 내 마음에 단비를 내리게 해야겠다.


다시 보고 싶다. 나의 마음을 열게 한 위대한 그 열쇠를. 너의 아름다운 미소를.


내 가슴속에서 그것들이 영원히 살아있었으면 해서 오늘도 이렇게나마 또 숨을 불어넣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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