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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홍 Jan 10. 2023

일본인 최애 '해넘이 국수' 직접 먹어보니

오키나와 여행기 3


한 해의 마지막을 일본에서 어떻게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처음 계획할 때는 도쿄의 시부야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화려한 조명,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카운트다운. 평소라면 기대되는 신나는 연말 풍경이었겠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아마도 지난 10월 핼러윈 참사의 잔상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 무조건 인파가 몰린 곳은 피해서 최대한 조용하고 오붓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오빠와 단둘이 방에서 하게 된 새해맞이. 그런데 이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밤 11시 30분에 방으로 배달된 토시코시소바였다. 그것도 너무나 귀여운 땡큐카드와 함께.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란 한 해를 넘기는 국수라는 뜻으로 일본 사람들이 매년 12월 31일에 먹는 소바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연말에 온 가족이 모여 소바를 먹는 데에는 가늘고 길게 늘어나는 소바처럼 수명을 연장하고 싶은 '장수'의 의미가 있다고. 또 찰기 없이 뚝뚝 끊어지는 소바처럼 한 해의 액운을 끊어내자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후 이러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또 먹어줄 수밖에 없지. 장수는 별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나는 두 번째 의미에 확 꽂혀버렸다.


주변 사람들의 액운을 내가 대표해서 아주 그냥 잘게 잘게 끊어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에. 소바면을 꼭꼭 씹어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찰기 없는 퍽퍽함에 국물은 싱거웠다. 오키나와식 소바만 이런 걸까, 아쌀하게 와사비가 들어간 한국식 메밀 소바가 그리워졌다. 그런데도 의무감에 깨끗이 바닥을 비웠다.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아빠도, 올해 새롭게 가족이 되어주신 오빠네 엄마아빠도. 귀여운 여친과 연애 중인 내 동생도. 말캉말캉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을 출산한 친구도, 결혼을 계획 중인 새신부 친구도.


치솟는 대출이자에 새로운 전셋집을 찾아보는 중이신 회사 선배도.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업무스트레스가 심해진 나의 남편도. 


한 입 한 입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씹었다(?) 모두모두 새해에는 행복하세요!

 

그리고 소바의 신이시여, 저의 액운도 모조리 가져가주옵소서. 

들숨엔 재력을, 날숨엔 체력을. 적게 일하고 많이 벌게 해 주소서. 아무래도 내 소원을 제일 길게 빌었다.


TV를 트니 가수들의 연말 무대가 한창이었다. 저것이 말로만 듣던 일본의 '홍백가합전'인가. 오늘 같은 날 무대에 설 정도면 상당히 유명한 가수일 텐데, 미안하지만 스타일이 영 별로에 노래 실력도 형편없었다.


BTS가 군대에 가는 새해에도 세계로 뻗어나가는 K-pop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치얼스.


3, 2, 1. Happy New Year!





"안녕, 올해는 처음 만나네."


2023년 1월 1일.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자리 남성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우리가 부부로서 처음 맞는 새해다.


기왕 숙소에 돈 쓴 거 뽕을 뽑으려면 온천을 최소 두 번은 이용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빈 방을 찾아 또다시 뜨신 물에 몸을 담갔다. 


오늘 찾은 방의 이름은 利休, 쉼을 만끽하다.

태평양의 아침 풍광은 어제저녁 늦게 마주한 모습과는 또 달랐다. 역시나 세상은 이렇게 크고 넓고, 인간은 한낱 티끌에 불과하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온천을 하다 보니 아주 솔직한 상태로 내 몸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새해에는 다이어트를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0초 만에 포기했다. 결혼식 때도 못 뺀 살을 해가 바뀌었다고 뺄 수가 있겠냐. 


다만 새해에는 내 커리어보다는,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더 집중해보자고 다짐했다. 여기에도 공개적으로 선언. 땅땅땅.



깔끔한 목욕재계와 체크아웃 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점심식사. 원래 아침 제공이던 식사를 점심으로 바꿨다. 


점심 메뉴는 치킨과 오키나와식 두부였는데, 이번에 나온 오키나와 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고소하고 함께 나온 야채들도 맛있어서 한 그릇을 싹싹 만족스럽게 비웠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끝으로 햐쿠나가란과 아쉬운 작별. 직원 분이 주차장까지 나와서 차에 짐을 옮겨 싣고 우리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돈 쓴 보람이 있는 멋진 1박이었지만 사진 찍기는 역시.. 한국인이 짱인 것 같다. 

얼굴을 가리니까 좀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비율이..ㅎㅎ 여친 분에게 교육 좀 받으셔야겠어욧.


햐쿠나가란에서의 소중한 하루는 별 다섯 개. 재방문 의사 완전 있음.

2023년 새로운 출발 다짐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추억을 선사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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