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上海东方体育中心)
코로나 이후 6년만에 두 번째로 방문한 상하이 여행의 목적은 단 두 가지였다. 우전과 수영.(우전은 이 글에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한 마디만 하자면, 전세계 다녀본 어느 곳보다 아름다웠다.) 베이징 국가 수영 센터(Water Cube)로 원정수영을 떠난 사람들의 후기는 많이 보였지만 상하이에서 공공수영장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후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뭐 그만큼 시설이 괜찮은 수영장이 없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저런 서칭을 하다 발견한 수영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동방체육중심/上海东方体育中心)
위 사진에서 수영장 건물은 좌측 아래에 있는 옥란교(玉兰桥)다.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에서는 수영 외에 스케이트장나 그 밖의 다양한 운동 시설이 모여있고 콘서트도 열린다. 우리나라로 치면 올림픽 공원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여름철에는 야외수영장도 개장 하지만 나는 한겨울에 방문했고, 아마 개장을 했어도 가족 단위 방문객의 물놀이 장소가 아니지 않을까 싶어서 아쉽지는 않았다.
방문할 수영장을 정하고 나서 다방면으로 서칭을 시작했다. 하지만 네이버는 물론이고 구글에서도 딱히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찾지 못했다. 결국 중국인들이 자주 사용한다는 SNS 샤오홍슈(Red Note)에서 유의미한 후기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찾은 내부의 모습은 이러했다.
무려 50m 풀이 두 줄로 이어진 엄청난 규모! 여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수영장 찾아가기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는 관광객들이 일반적으로 머무는 명소와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다. 전날 우전 일정 때문에 상해남역 터미널을 오고갔는데, 상해남역에서는 택시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비교적 편하게 도착했다. 바로 앞에 지하철역도 있다고 하니 이동 시간만 감수하면 오고가기 그렇게 어려운 곳은 아닌듯 했다.
9번 게이트로 들어와 왼쪽으로 한 번 더 문을 지나쳐 들어가면 누가봐도 '수영장 입구'같은 공간이 나온다.(아쉽게도 사진 찍는 걸 잊어버림) 쭈뼛쭈뼛 들어가 "와이궈런, 이거런(외국인, 한 명)"이라고 말하자 직원분께서 9번 게이트 근처의 다른 분에게 가서 등록절차(?)를 도와주셨다. 위챗을 통해 가입 QR을 제시해야 했는데 여행자용 임시 유심을 사용 중이라 그런 건지 네트워크 오류가 뜨며 QR을 불러올 수 없었다. 결국 이름과 한국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고는 수영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료는 주말 기준 45위안, 당연하게 위챗페이로 결제했다.
같은듯 다른듯 비슷한 수영장 시스템
입장료를 지불하면 우리나라 수영장처럼 실리콘으로 된 팔찌를 받는다. 따로 라커 번호가 붙어있지 않아서 어떻게 사용을 하나 했는데, 다행히 탈의실에 들어가니 직원분이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라커룸 가운데에 위와 같은 스크린이 붙어있고, 아래 부분에 팔찌를 갖다대면 현재 사람들이 사용 중인 라커의 위치가 뜬다. 아직 사용 중이 아닌 라커를 선택하면 해당 라커가 열리는 구조. 우리나라 지하철 물품보관함과 동일한 시스템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신기했던 또다른 시스템. 샤워를 할 때 제한 시간이 존재한다. 샤워기 옆에 팔찌를 거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 팔찌를 인식시켜야만 샤워기를 사용할 수 있다. 샤워기 사용 시간은 수영 전후를 합쳐 20분. 평소에도 후딱후딱 샤워를 마치는 편이라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나, 샤워 시간이 긴 내 수친들에게는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기대와는 달랐던 수영장
두근두근하며 들어간 수영장, 그런데 SNS에서 본 것과는 뭔가 구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천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레인 구분도 돼 있지 않은 수영장이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중에 수영을 모두 마치고나서야 알게된 사실인데, 내가 사진으로 질리도록 본 거대한 수영장은 대회가 열리는 Competition Pool이고,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수영장은 Public Pool이었다. 실제 수영이 가능한 Public Pool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고, Competiton Pool은 관객석에서 수영장을 촬영할 수 있으니 다들 그곳의 사진을 찍어 올렸던 모양이다. 중국어 까막눈인 나만 영문도 모르고 SNS에 올라온 거대한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있다고 단단히 착각했던 것이었다.
너무나 크게 실망을 했다. 레인 없이 중구난방으로 다니는 수영장이라니! 난 물놀이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진짜 '수영'을 하고 싶어서 온 건데, 이럴 거면 수영장이 괜찮은 호텔을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없이 수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의 사람들도 '수영'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뚜렷한 레인은 없지만 모두가 각양각색의 방향과 영법으로 열심히 물살을 갈랐다. 순간 내가 왜 레인과 철저한 규칙이 있는 수영만 '진짜 수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수영장이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될 거라면 내가 남의 나라까지 와서 공공수영장을 갈 이유도 없겠다라는 생각도. 이것 또한 새롭게 내가 경험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니 그때부터는 정말 즐겁게 수영할 수 있었다.
참고로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의 Public Pool은 10개의 레인이 있는 수영장을 가로 레인 하나로 나누어, 1.2m의 얕은 풀과 2m의 깊은 풀 두 가지로 운영하는 구조다. 이왕이면 2m 풀에서 수영을 하고 싶었는데 라이프가드가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했다. 베이징 Water Cube 수영장 방문 후기에서 깊은 풀은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서 아마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수질은 가시성이 아주 좋은 것으로 보아 괜찮은 것 같았다.
상하이 원정 수영이 남긴 것
이번 여행 일정은 여러가지 의미로 내 편견을 깨뜨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명확한 규칙과 질서정연한 한국의 공공수영장이 참 좋다. 하지만 때로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수영도 큰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또한, 카운터 직원에서부터 라이프가드까지 정말 많은 현지 분들이 언어 하나 통하지 않는 나를 배려해주셨다. 아마 이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수영장 근처에도 갈 수 없었겠지. 어리바리한 와이궈런을 참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谢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