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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ul 16. 2016

찾을 수 없는 길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 오시이 마모루 / 1995

Animation. 처절할 대로 처절한.

이상한 일이다. 이런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에 이미 익숙한데도 왜 이렇게 뒷맛이 씁쓸할까. 아마도 다른 영화들이 과학기술문명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이 영화는 ‘존재’ 자체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자기 뱃속이 제일 미궁인 인간, 이놈의 빌어먹을 인간에 대한,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그 혼란스러운 목소리에 대한 성찰이다.    


'지금 우리들 거울로 보는 것처럼 보는 곳 어렴풋하도다.'    


1. 미래, 블레이드 러너가 있는 세계    

이 영화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많이 닮았다. 소재가 그렇고 분위기가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와 많이 다르다. <블레이드 러너>는 과학의 위험성-그것도 어느 정도는 인간의 힘(윤리적인 것 혹은 양심 따위)을 통해서 통제가 가능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특히나 예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을 유도해 간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그러나 <공각기동대>는 다르다. 과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전뇌나 의체는 이미 보편화된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의 위험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윤리적으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문제들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밀려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블레이드 러너>가 미래에 있을 법한 문제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라면 <공각기동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미래의 한 시점, 특정한 자리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음이지, 시점이 아니다.     


2. 미궁    

쿠사나기 소령은 전뇌와 의체를 통해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전뇌와 의체로 인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성형수술이 보편화되었다. 그것은 이제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고 심하게 거부감을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미래의 어느 즈음, 어느 공간에서는 전뇌나 의체도 성형수술처럼 보편화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병들거나 허약해진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에는 보다 강해지기 위해.

쿠사나기 소령은 왜 회의하는가.

문제는 전뇌나 의체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하는 시작점일 뿐이다. 나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 보다 강해지고자 하는 것. 그것도 어쩌면 자기를 정의하고 싶은 마음, 자기를 어느 자리엔가 확고히 위치시키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다. 쿠사나기 소령이 전뇌와 의체를 가지게 된 것도 역시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자신이 그것을 실제로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러나 자기 찾기는 실패하도록 예정되어 있으며 쿠사나기 소령은 그 실패의 끄트머리에 있다. 새로운 찾기를 시도해야 하는 자리. 몸이나 외부로부터 정의되는 자기가 아닌,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시작되는 자기 찾기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미로의 시작일 뿐이며, 그녀는 결국 새로운 어린아이가 되었을 뿐, 존재는 영원히 미궁이 된다.    


3.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존재란.

인형사는 말한다. '인간의 DNA도 결국은 자기 보존 program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간의 이성, 사랑, 영혼, 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자신을 살리고 유지하기 위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어떤 거창한 철학적 회의도, 혹은 죽음을 선택하는 일마저도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왜 인간은 인간이고 싶은가. 왜 인간이 아닌 것들과 구별되고 싶은가. 인간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삶은 혹은 살아있음은 우리가 있는 공간 어디엔가에 종속되어 있지만 공간은 개척하는 한, 여행을 계속하는 한 끊임없이 넓어지는 것이다. 존재는 그 끝없이 넓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끝에 있을 것이므로 결국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그것을 찾기 위해 있는 것이니, 아니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니-어쩌면 죽음도 그 연장일 것이다.- 여행을 멈출 수도 없다. 

쓸쓸하다. 답은 없다.


'네트는 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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