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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Aug 27. 2016

나는 INTJ입니다, 당신은요?

우리는 정말 다르네요

'내 인생의 목표는 동선을 줄이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농담이긴 한데, 농담이 아니다. 나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방 안에서라면, 손이 닿는 곳에 노트북이 있고 시선이 닿는 곳에 TV가 있다면, 시간만 허락한다면, 며칠이고 그대로 틀어박힐 수 있다.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몸은, 잘 쓰지도 않는데 맨날 아프고 거추장스럽기만 해서 그냥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뇌하고 눈만 있으면 내가 가진 욕망은 언제나 충족할 수 있을 테니까.


며칠을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나에게 후배가 제안을 했다. 곰팡이 나기 전에 성격유형검사 중 하나인  MBIT 강연을 들으러 가자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를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으로 꼬셔야만 내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잘 아는 후배였다. 그렇게 성격유형 공부를 시작했다. 흥미를 느끼면 꽤나 몰입하는 나는, 웬만해서는 소모하지 않는 주말까지 투자하여 먼 거리를 다니며 MBTI를 공부했다.


나는 '감정'에 취약하다.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고, 감정이 생겨나는 것 자체를 제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왜인지 내 속에서는 항상 감정에 흔들리지 말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나에게는 몹시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이론적인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격유형을 공부하러 가서 내가 제일 먼저 얻은 것은 지적 쾌감이 아니라 위로였고 안도라는 '감정'이었다.


나는 성격이 특이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특이하다고는 했지만 사실 이상하다는 평가였다. 엄마도 내가 성격이 이상하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살았다. 이상한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늘 나에게 미움을 받았다.


공부를 하고 보니

나는 INTJ였다.


나는 분명히 열여섯 가지 유형 중 하나인 INTJ였다.  INTJ에 대한 설명은 온전히 나에 대한 설명이었다. 가끔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나와 똑같지는 않았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점도 갖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성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설명을 들었다.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나 말고도 있었던 것이다.


올해 초에는 애니어그램 공부도 했다. 성격유형에 대한 공부를 통해 내가 처음 얻은 것이 위로와 안도라는 감정이었다면 마지막에 얻은 것은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생각해보면 나만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많은 사람들을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만큼, 사실 나도 사람들이 이상했다. 그래서 나도 무수히,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상한 성격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나는 아직도 편한 집을 놔두고 몇 시간씩 텐트를 치고 불편한 잠을 자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하다. 그러니, 내가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불평할 일도 아니다. 어쩌면 나와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성격이 이상하다는 평가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회식이 정말 싫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회식을 견디는 줄 알았다. 견뎌야만 하는 회식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2시까지 회식을 하고 나면 나는 12시까지 야근을 한 것처럼 지쳤다. 회식을 하러 가자고 손을 잡아 끄는 사람이 너무 미웠다.

나는 이제 회식을 하러 가자고 내 손을 잡아 끄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힐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회식이 스트레스를 푸는 해방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그는 자신에게 그러한 의미인 회식을 나에게도 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자책하며(나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까 오래 생각했다) 억지로 끌려가지 않는다. 견딜 수 있으면 가고 그렇지 않다면 당당히 빠진다.(누가 뭐라 하든)


물론 성격유형에 관한 공부를 했다고 해서 나와 다른 모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불편하고 때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단지 다르기 때문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것은 달라서 불편하긴 하지만 좋거나 나쁜 가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미움은 많이, 사라진다.


나는 영영 INTJ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내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인 ESFP다. 성격유형검사를 해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나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남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너무 달라서 다투기도 하지만 더 많은 순간에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가 된다.


당연히, 몇 가지의 성격유형으로 개인이 가진 개성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게 수많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세상은 재미있다. 만약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세상이 구성되어 있다면, 그 세상은 점쟁이도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한, 심심하기 짝이 없는 곳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나는 나다. 그래서 나는 나로 살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너인 것을 인정한다. 너는 너로 살면 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이해할 수 없으면 없는 데로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다름을 인정하다 보면 오히려 너와 내가 같아지는 지점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 제목의 배경 그림 - 에곤 쉴레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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