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쪼꼬 이야기
나에게는 10살 된 늙은 개가 있다. 쪼꼬다.
원래 이름은 초코인데 부르다 보니 쪼꼬가 됐다. 털을 짧게 잘랐더니 사내아이 같아서 쪼군이라고 불렀고 내 딸이니 쪼딸이라고도 불렀으며 내 팔에 붕가붕가를 해대는 바람에 쪼봉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생각해 보면 십 년 동안 무수한 이름으로 불렀다. '쪼봉이 빤쭈'라는 주제가도 있다. 주제가도 여러 번 바뀌었다.
‘쪼’라는 말만 나와도 나를 향하는 까만 눈동자.
개는 주인을 닮는다. 어쩌면 나와 닮은 개를 선택해서 주인이 된다.
쪼꼬는 나와 많이 닮았다. 비쩍 말랐고, 저질 체력이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금세 지쳐 주저앉아 버린다. 쪼꼬와 둘이 있는 휴일은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완전한 시간이 된다. 둘이 꼭 붙어 누워서 종일 뒹굴거리며 TV를 보고 한껏 게으르게 졸음에 몸을 맡긴다.
산책을 나가면 금방 주저앉아 버릴 거면서, 낯선 소음에 놀라 벌벌 떨 거면서, 그래도 쪼꼬는 언제나 나를 따라나서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쪼꼬는 산책이 좋아서 따라나서는 게 아니다. 나하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다. 어떤 좋은 풍경 속에 있어도 내 무릎 사이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우리 쪼꼬.
유선 종양 수술을 하고 입원했던 날, 면회를 갔다. 간이침대에 실려 나오던 쪼꼬는 나를 보더니 펄쩍펄쩍 뛰었다. 한쪽 유선을 모두 드러내는 수술을 해서 그 조그만 몸 전체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는데도,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1시간, 깊은 잠을 잤다. 그렇게 아픈 몸을 하고서도 쪼꼬는 나에게 완전한 1시간을 선물했다.
2.3KG, 못난이 내 딸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내 눈물을 봤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밤을 나와 함께 잤고, 나의 아픔과 피곤을 안아 줬다. 술에 취해 널브러져도, 씩씩거리며 화를 내도, 귀찮다고 밀어내도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나를 향하는 마음이 지치지도 않았다. 늘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나를 이만큼, 못난 모습까지 통째로, 사랑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쪼꼬를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나를 향한 쪼꼬의 사랑을 이길 자신이 없다.
쪼꼬의 마음은 나의 착각이거나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마음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그렇게나 소중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미처 몰랐다면 알아야 한다.
인간은 모자에 장식을 하겠다고 살아있는 채로 너구리의 가죽을 벗기고, 보드라운 털을 얻겠다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리와 토끼의 털을 뽑는다.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우리 속에 가두어 놓고 살을 불린다. 상품가치가 없는 수평아리는 분쇄기계에 넣어 버린다. 연한 고기를 얻기 위해 마취 없이 거세를 하고 때려죽이기도 한다. 인간을 위한 화학약품을 만들기 위해 실험에 이용하고 고통스럽게 죽인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자가 육식동물이라고 해서 잔인하다고 할 수 없듯이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을 죄악시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자와 인간은 분명히 다르다. 사자는 충분히 배부르게 먹은 후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생명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인간은 배가 터지게 먹었지만 멈추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창고가 넘쳐나도 멈추지 않는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한다. 탐욕에 눈이 멀어 마음을 가진 생명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하게, 다른 생명을 함부로 대한다. 대체 누가 인간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단 말인가.
인간의 이러한 행위는 결국 인류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과 그들의 땅을 모조리 빼앗아 버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한 지분 외의 것을 너무 많이 가졌다. 자연을 지탱하는 것은 균형이다. 인간이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진 결과로 균형이 사라지고 균형이 사라진 자리에는 위태로움만 남는다.
나의 쪼꼬도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이니 지구의 어느 만큼 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줄 수 없는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집, 마루, 조그만 방석을 선물한다. 쪼꼬는 그것들을 다 뒤로하고 내 무릎에 올라와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잠을 청한다. 완전한 시간이다.
그들의 마음은 존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