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잠 Apr 20. 2017

왜 자율학습을 자율로 하면 안 되나요?

그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경기도에서 야간 자율 학습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주장들이 시끄럽다. 그런데 그 시끄러운 주장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궁극적으로 강제적인 야간 자율 학습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사람, 지금은 시작할 시기가 아니라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육이 심각한 문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에도 모두들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시끄럽더라도 꿋꿋하게 밀고 나가기를 응원한다. 개혁의 시작은 그런 것이다. 변화는, 익숙한 길이 아니기에 불편하고,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은 용기가 나지 않을 때가 많다. 언젠가는 시작해야지 하고 매일매일 변화를 미루기 십상이다.

그래서, 경기도 교육감의 용기와 추진력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욕도 먹을 것이고,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내야 변화가 시작되고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학교에서 석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저녁을 챙겨 먹을 수 없게 된다고. 아니다. 챙겨 먹을 수 있다. 이미 고등학생이다. 17살 이상의 아이들이 자신의 저녁조차 챙길 수 없다면, 오히려 이제라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석식 지원의 문제는 좋은 아이디어만 찾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야간 자율 학습을 폐지하면 아이들이 그 시간에 다 학원에 가게 된다고. 맞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면 야간 자율 학습을 하면 어떤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학원에 간다. 우리 사회가, 부모가, 학생이 지나치게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과도한 경쟁구조 때문이다. 야간 자율 학습을 유지한다고 해서 학원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학원에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학원을 가는 것이 낫다. 그러면 적어도 새벽 1~2시까지 학원 수업을 듣는 지옥에서는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미 더 심해질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교육열과 소득 불균형이 갈수록 가속화되는 구조의 문제다. 구조의 개선없이 야간 자율 학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그 불평등이 해소될 리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는 시간에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맞다. 그런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나는 궁금하다. 왜 수업을 마치고 나서 또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 그냥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뒹굴 거리다가 잠이 들면 안 되는 건가?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쑥쑥한 데이트를 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저녁을 보내면 안 되는 건가?

왜 우리는 쉼을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 왜 깨어있는 모든 시간 동안 일이든, 공부든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차피 사회에 나오면 야근이 당연한 삶을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내성이라도 키워주려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사명은 아이들을 닦달하며 이런 삶에 대한 내성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야근 없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하루에 14시간, 혹은 그 이상, 책상에 앉아 있으면 14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공부에 소질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세상에는 공부에 소질을 가진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그들만 특별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소질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그 다양한 소질들은 동등하게 인정되어야 하며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그러니 다양한 소질을 가진 다양한 아이들이 하나의 교실에서 14시간, 똑같이 앉아 국영수를 공부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고, 이러한 교실의 모습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의 문제적 교육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교육의 문제는 사회가 가진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가진 총체적 불건강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을 먼저 개선해야 하는 것인지 다른 분야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저항이 있을 것이고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그 저항의 위치와 부작용의 모양새만 다를 뿐.

그래서 용기 있는 자가 시작을 외쳤다면, 그의 용기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면, 불안과 두려움 뒤로 숨지 말고 그 시작을 응원해야 한다.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다 같이 머리를 모아 의논하고 차근차근 해결책을 찾아가면 된다.

야간 자율 학습을 폐지한다고 해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리는 만무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변화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야간'자율'학습 아닌가. 야간에는 학습을 하든 놀든 '자율'이어야 한다. 수업이 끝나면 그들의 삶은 그들의 자유여야 한다. 그들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와 여자가 싸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