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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ul 31. 2017

이 사건의 원흉은

잘 들여다보면

인터넷에서 한 여성이 성토하는 글을 보았다.

자신이 출산 때문에 한 달 동안 친정에서 몸조리를 했는데 시어머니가 아들의 밥을 해주기 위해 자신의 집에 와 있었단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살림을 본인의 취향대로 다 바꾸어놨을 테니 기분이 나쁘다고. 돌아가면 대청소하고 이불빨래까지 해야 한다고.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어떤 사람들은 며느리를 욕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더럽냐고, 이불빨래는 뭐냐고, 아들 밥 챙겨주러 온 것은 고마운 일 아니냐고. 자기 부모한테도 그렇게 하냐고.

어떤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욕했다. 자기는 친정엄마라도 자기 물건에 손대는 것 싫다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시어머니가 며느리 물건 이것저것에 다 손을 대냐고.


생각해보니 양쪽 모두 이해가 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아들을 챙긴 것일 뿐인데 그걸 싫다고 하는 며느리가 나쁘게 생각될 수 있다. 내 방에 우리 엄마도 출입 못하게 했던 나로서는, 나라도 시어머니가 나 없는 부엌을 쓰시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 며느리의 심기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해 안 되는 것이 있다. 

이 사건을 두고 며느리나 시어머니 중 누군가를 욕하는 것이 정당한가. 잘 들여다보면 이 사건의 원흉은 그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니다. 


남편에게 이 사건을 말했더니 엄마가 와서 밥을 챙겨주면 좋을 것 같다고, 남자들은 혼자 있으면 밥을 잘 못 챙겨 먹는다고 했다. 며느리 입장에서도 시어머니가 챙겨주니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냐고 했다. 그래서 며느리 입장은 이해가 안 되냐고 했더니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뭐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냐는 표정이었다.)


결혼한 딸의 남편이 출장을 갔다. 그래서 딸이 혼자 있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없을까 봐 친정엄마가 밥을 챙겨주러 온다. 이런 상황을 들어본 적이 있거나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경우 아이보기를 도와주러 오기는 한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딸의 밥을 챙겨주러 오는 친정엄마는 없다.

그런데 아들의 밥을 챙겨주러 오는 시어머니에게서 우리는 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가. 자식까지 둔 장성한 남성은 왜 밥을 혼자 챙겨 먹지 못하는가. 왜, 심지어 늙은 엄마가 그것을 해결해 줘야 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혼자 남겨진 시아버지는 어떻게 밥을 챙겨 먹는가.


워킹맘이라는 말이 있다. 

'워킹'이 남성의 영역이라면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의 영역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워킹'이 남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워킹맘'이라는 말이 보여주고 있는데도 집안일과 육아가 온전히 여성의 영역인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도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성인 남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워킹파'라는 말이 생기던지, '워킹맘'이라는 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후자가 더 바람직한 듯)

이런 며느리의 글이 다시 게시판에 올라왔을 때, 무슨 남자가 혼자 밥도 못 챙겨 먹어서 늙은 어머니를 힘들게 하냐는 댓글들이 당연하게 달리는 어느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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