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일요일 밤은 고통스럽다.
고통스럽다는 표현은 좀 과한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왠지 뱃속이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졸음이 쏟아지는데도 선뜻 잠자리에 들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시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나의 마음을 다소간, 안정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JTBC의 <비긴 어게인>.
나는 이소라를 좋아한다. 아니, 그녀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이 아름답고, 내가 그 가사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몰입하게 만드는 그녀의 잔잔하지만 깊은 창법이 좋다.
옛~날에 <이소라의 프러포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녀가 진행을 하느라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아서 늘 아쉬웠다. 그러다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노래를 잘 하기로 유명한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고 순위를 메기는 프로그램이라 볼 때마다 귀가 호사를 누렸다. 어쨌든 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이소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매번 이소라는 낮은 순위에만 있었다. 나에게는 늘 1등이었는데, 오늘 노래 너무 좋았다고 감탄, 또 감탄했는데, 매번, 낮은 순위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골몰하며 프로그램을 보았다. 대부분의 경우 높은 순위를 얻는 가수들은 화려하게 편곡된, 고음이 많은 노래를 불렀다. 무대매너도 화려했다. 그랬다. 이소라는 편곡을 많이 하지 않았고 앉아서 부르는 경우도 많았으며, 화려한 고음의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라, 이소라는 '바람이 분다'를 부를 때 가장 아름답다. 한 번은 이소라가 파격적으로 보아의 노래를 편곡해서 부른 적이 있는데, 그때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분명, 나의 분석이 맞다.
이미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가수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나는 가수다>의 경연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의 항의로 진행방식을 조금씩 바꾸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가수다>는 제법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실력 좋은 가수들의 노래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분명 사람들에게 매력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가수다>의 이러한 성공이 이미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마저 '경연'을 하게 만드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경연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면, 노래를 듣고 있다기보다는 기예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더 고음을 낼 수 있는지, 누가 더 화려하고 특이하게 편곡을 했는지, 누가 더 어려운 리듬을 구사하는지를 경쟁한다. 나는 누군가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노래를 듣고 싶지 않다. 더더구나 누가 누구보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실 그들에게 객관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미 다 1등 가수가 아닌가. 나에게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1등일 것이다. 이소라는 1등을 잘 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늘 1등 가수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보다도, 그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일에 정신이 팔려 음악을 음악으로서 즐길 수 없는 것이 더 문제다. 음악이 주는 감동은 고음이나 화려한 편곡이나 어마어마한 밴드의 사운드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음악에 대한 조예 따위는 전혀 없는 문외한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 무대들은 과연, 가수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그러다, <비긴 어게인>을 만났다.
이소라와 윤도현의 음색은 썩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음악적 색깔도 너무 다르다. 유희열의 건반과 윤도현의 기타 반주만으로는 충분한 사운드를 만들기 어렵다. 더구나 시끄러운 길거리에서 진행하는 그들의 공연은, 완성도를 따져본다면 늘 실패에 가까웠다.
그러나, 매번 그들의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이소라의 노래가, 윤도현의 노래가 너무 좋았다. 1등이어서가 아니었다. 고음이 잘 올라가서, 완벽한 공연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이 목적이어서 좋았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를, 노래하는 마음을, 노래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그림과 감정들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진짜로 온전히,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어떤 프로그램을 어떤 채널에서 몇 시에 하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을 잘 기억하는 남편이 매번 일요일 밤이면 <비긴 어게인>을 틀어주었다. 남편은 이소라보다는 윤도현의 노래를 좋아한다. 나는 이소라를 듣고 남편은 윤도현을 들었다. 누구도 이기거나 지지 않았다. 누구도 잘하거나 못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월요일 전야의 피곤을 달랬다.
일단, 그렇게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비긴 어게인>은 끝났다.
아쉽지만 기대해본다. 제목이 <비긴 어게인>이니까,
다시 시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