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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Jul 17. 2016

남자와 여자가 싸운다

여자와 남자가 싸운다

남자와 여자가 맨날 싸운다. 요즘, 그렇게 느껴진다. 남자들은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보호받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해서 불공평하다고 한다. 요즘은 남자들이 오히려 차별당한다고 한다. 여자들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여자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과 불공평에 대해 마구 쏟아낸다. 우리 사회는 남자가 살기 좋은 사회일까? 여자가 살기 좋은 사회일까? 


실은 여자와 남자가 싸우고 내가 더 힘들고 네가 덜 힘들다고 서로 우기는 것은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공격 대상을 잘못 잡은 거다. 우리 사회는 남자가 살기 좋은 사회도, 여자가 살기 좋은 사회도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자가 더 살기 어려운 사회가 맞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과거에 비해 자신의 지위가 하락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역할이나 영역은 변한 것이 없는데 상대적 지위가 낮아지니 당연히 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지위가 나아졌다고 해도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맨날 싸운다. 


우리가 싸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나의 입장을 알리고, 내가 받았던 불공정한 대접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싸운다. 남자가 이긴다. 그러면 남자는 과거의 자신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여자가 이긴다. 그러면 여자는 내가 원하는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 싸움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가 없다. 그냥 기분만 상할 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요즘 남자들이 힘든 이유. 단연, 먹고 살기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남자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먹고 살만큼 돈을 벌기가 너무 힘들다. 직장을 구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유지한다고 해도 가족들이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오른다. (부모가 가난하기라도 하면, 부모까지도 부양해야 한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돈이 모자라니 가족들이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는 것 같지 않다. 돈 버는 기계가 된 것 같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충분하지 않으니 지치고, 왜 나는 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생긴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문제를 여자와 싸워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남자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싫다면 여자와 싸워 이겨서 맞벌이를 하게 할 수 있다. 싸우지 않아도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힘들어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만족스러운 성취를 이루기 어려운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자들마저도 경쟁상대로 느낀다. 게다가 그 여자들은 ‘가장’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처럼 엄청난 책임감 속에서 일하지 않는다(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이건 모든 직장인의 로망 아닌가?!)고 생각한다. 편하게 일하고 적은 돈을 벌면서도 목소리가 커지는 여자들이 보기 싫다. 사실 남자들의 관심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벌고 똑같이 가사를 분담하는 그런 평등의 모습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원하는 바가 그런 모습이라면,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자꾸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자들은 자신의 능력이 충분히 인정받기를, 그래서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그 대가로 가족들이 여유롭게 생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이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속에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 그것이 진정으로 남자들이 바라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여자와 싸워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의 사회적 성취가 어떤 모습이든 그것은 남자의 사회적 성취와는 관계가 없다.(그냥 기분의 문제일 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일자리 부족, 비정규직, 부의 재분배 등. 아! 이건 너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 넘어가자)을 개선해 가야 남자들이 바라는 사회가 올 수 있다. 


요즘 여자들이 힘든 이유. 역시, 먹고 살기다. 결혼을 하기 전 여자들은 보통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직장들은 결혼과 출산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많은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 특히 출산 이후 직장을 잃는다. 그리고 한동안 아이를 키운다.(요즘은 혼자서 키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육아의 고통은! 아!, 이것도 또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 넘어가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 사회. 외벌이로는 가정살림이 어려워진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여자들. 경력이 단절되어버린 그들은 자신이 가진 커리어와 상관없이 비정규직으로,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일을 한다고 해도 가사노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이까지 생겨버리고 나면 일을 하고 돌아와 집에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가사노동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남자와 싸워서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어쩌면 남자와 싸워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편과 싸워서 가사노동의 분담을 쟁취할 수 있다면!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일까? 여자의 사회적 지위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경제력’이다. 여자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지위가 상승되었다. 여자들이 다시 일을 한다고 해도 남자들에 비해 덜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은 없다. 그렇게 여겨진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임금이 적은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자들의 일은 남자들의 일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음을 주장하지도 못한 채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위치에 놓인다. 남자보다 낮은 임금은 여자들의 목소리에서 힘을 빼버려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혼과 출산이 여자들의 경력을 단절시키고 커리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한, 그래서 그들이 다시 취업을 한다 해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기는 어렵다. 여자들이 경력 단절을 겪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가 마련될 때, 비로소 여자들은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성별이 경제력을 형성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사회가 됐을 때, 여자들은 비로소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살기가 힘드니까, 다들 화가 나 있다. 이 힘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원래 흥분해 있을 때는 문제의 본질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손쉬운 상대를 찾아 자꾸만 싸운다. 결국, 남자와 여자가 싸워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다.    

남자는 직장 다니는 아내가 일찍 돌아와 집안일을 챙기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직장의 여자 동료가 일찍 퇴근하는 것을 싫어한다. (여자들은 다 저래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내는 것이 매너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돈을 내지 않거나 각자 내면 쪼잔하다고 한다.) 이 모든 사소한 어긋남도 따지고 들어가 보면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가사분담 문제를 놓고 ‘누가 얼마를 벌고 누가 결혼 때 얼마를 해왔으니 누가 몇 %를 부담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싸우는 부부를 봤다. 안타깝다. 왜 엉뚱한 대상과 싸우고 있는 건지.

얼마나 서로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인가. 여자와 남자는.


저녁이 되면 남편이랑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산책을 해야겠다. 

고마워요. 나의 가족이 되어줘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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