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장관의 딸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이로 인해 분개하였다. 결국 대통령은 정시 확대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하다. 정시 확대, 정말 이것이 교육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시가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믿는 듯하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수시가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현실이 입시의 결과에 반영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시를 확대한다고 해도 똑같은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시를 준비하는 것은 수시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격차가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수시 때문이 아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완전히 다른 환경을 제공받는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많은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고, 해외여행을 하고, 단기, 장기 유학의 기회를 얻는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계획하고 만들고, 관리해 준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집의 아이들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무교육 이외의 다른 것을 제공받기 어렵다. 맞벌이를 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는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기도 어렵다. 부유한 집의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집의 아이들에 비해 훨씬 다양한 정보를 얻고 전 세계로 확장된 넓은 세상에 산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크기가 이처럼 다르니 애초부터 너무나 불공평한 경쟁이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격차가 수시 때문이라고?
오지선다형, 객관식, 그것이 가장 객관적으로 실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실력'이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는지? 국영수 오지선다형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가를 보는 것으로 누군가의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소질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소질과 실력은 너무나 다양해서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양한 기준으로 다양한 실력을 가늠해 보고자 만든 것이 수시이다.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정시에서 수시로, 내신에서 고교학점제로, 이러한 변화들은 아이들이 가진 다채로운 색깔을 아름답게 뽐낼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으로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의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어떻게 제도를 정비한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분명히 계속 있을 것이다)
장이 나쁘기 때문에 피부에 자꾸 뭐가 난다면 장문제를 해결해야 피부가 좋아진다. 아무리 좋은 크림을 사서 발라도 피부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문제는 장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입시제도를 바꿔왔는가. 그렇게 고민하고 그렇게 많이 바꿔봤는데도 교육 불평등의 문제는 점점 심해진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교육 불평등의 문제는 교육이나 입시제도보다 빈부격차가 심화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만큼 격차가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완벽한 입시제도를 시행한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다양한 소질은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되어야 하고, 그 모든 소질은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니, 완벽한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수시가 그러한 평가에 더 적합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지금의 분위기는 애써 바꿔가고 있는 교육환경을 후퇴시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방향이 맞다면,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지 방향 자체를 틀어버리면 안 된다.
나는 세상의 모든, 다양한 직업들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 그래야 각기 다른 색깔과 소질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의 색을 마음껏 펼치며 살 수 있다. 지금처럼 직업에 대한 편견, 차별, 임금의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소질대로 직업을 고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는 불평등하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경제력이 신분을 만드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더 끔찍한 것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자본을 가진 사람과의 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인생은 부모가 얼마만큼의 경제력을 가졌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가 된 까닭은 수시제도 때문이 아니고 개인의 노력으로는 주어진 경제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사회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불평등의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시는 국영수 문제를 누가 더 잘 푸는가로 아이들을 평가한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오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기계적인 공부에 몰두한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방향이 맞을까. 정시를 확대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 마음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