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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잠 May 28. 2020

인간의 지분은 어느 만큼 일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괴롭다

올겨울에는 맑고 깨끗한 하늘이 많았다. 작년 12월부터 3월까지 모든 공무원들에게 차량 2부제가 권고될 만큼 겨울이면 특히 더 미세먼지가 심했었는데 올 겨울은 뿌연 하늘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다행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 겨울의 하늘이 왜 깨끗했었는지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 중국에 코로나가 창궐하는 바람에 많은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되었고 그 결과로 중국의 대기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사라진 덕분에 올겨울, 우리를 괴롭히던 미세먼지 훨씬 덜했던 것이다!

최근 유럽에도 코로나가 퍼지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가 굉장히 깨끗해졌다고 한다. 맑고 깨끗한 물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뉴스로 보았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나는 많은 동물들.


이쯤 되면 정말이지 인간의 존재가 재앙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인간 존재가 재앙이라고 다 죽어버릴 수도 없는 일이니 어느 만큼을 어떻게 가지고 살아야 자연의 일부로서 주어진 권리만큼을 가지는 것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러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 행위는 정당하다. 그리고 그만큼의 행위는 자연이 자연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자연 속에서 균형을 이룬다.


문제는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을 유지하는 일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먹고 자는 조건이 충족된다고 해도 인간 모두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조건과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선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생존과는 상관없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인간이 선택한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체들의 삶을 빼앗아 버린다. 그런데 이미 이러한 방식을 선택해 버린 인간이 그렇게 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까.


나는 종일 무언가를 본다. 정보를 담은 무언가를 보는 행위가 내 정체성의 일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들어앉은 공간의 청결함이 내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나에게서 박탈한다면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시간을 '삶'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남보다 많은 전기를 소모하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세제나 물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 나를 나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궁금해졌다. 인간이 가진 지분은 어디까지 일까.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어디까지 해도 되는 걸까. 어느 만큼 에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걸까. 나의 건강하지 않은 정신 때문에 나의 생존이 내가 누려도 될 만큼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괴롭다


2018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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