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물려주지 않을지
애착의 비움
나는 인간에게 공포를 느끼고,
인간의 얼굴에서 가면을 쓰고 있었다.
- 다자이 오사무
또다시 같은 실수로 관계를 망쳤다. 자취방 한구석에서 울음을 삼키며 『인간실격』을 덮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 말은 방금 관계를 끝낸 내 마음을 너무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나 역시 인간에게서 특히 따뜻한 관계라 불리는 것들에서 공포를 느껴왔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숨기고 싶던 내 결핍이 들킬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도 인간의 가면을 썼다. 밝은 척, 괜찮은 척, 자연스럽게 웃는 법을 흉내 내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별위기 때마다 상대방을 붙잡기 위해 '자살'을 언급했다. 소름 돋게도 극한 상황에서 "나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자살한 엄마의 방식과 나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진짜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고 싶었던 건데 상실의 트라우마를 통합하지 못해 엄마를 따라가려는 환상적인 충동이라는 형태로 나왔다. 그런 쓰레기 같은 협박이 상대에게 먹히기라도 하면, 관계의 주도권과 그 사람의 영혼까지 손으로 꽉 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참으로 징그러운 인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연기'를 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모를 만큼, 오래도록 연기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종지부를 찍게 한 존재가 있다. 그것은 '엄마'가 된 나였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엄마가 되는 게 아니었다.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나는 나를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과거의 '엄마 없었음'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엄마 없이 이렇게 컸는데, 나는 과연 내 아이의 진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갔을까?" 수많은 질문이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아이가 신생아이던 시기,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게 되자 자살 충동 자주 일었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죄 없는 아이를 보며, "나도 결국 자살한 엄마의 길을 가게 될 운명"이라는 메시지를 내면에 새겼다. 아이의 죄라면 나 같은 엄마에게 태어난 것이다. 아이가 불쌍하고 가여웠다. 엄마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려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나는 나의 엄마가 했던 방식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어."를 외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아이에게 주는 말투, 시선, 반응은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내가 받아본 적 없는 애정에 대한 무의식적 시도일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주는 일이란, 참 고된 싸움이었다. 나는 내 안의 결핍과 싸워야 했고, 내면의 아이를 쓰다듬어줘야 했다. 그저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아이와 함께, 나도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가 엄마가 되어도 괜찮은지 돌아보게 만든 존재였고, 동시에 진짜 엄마가 되어보자고 이끄는 존재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져 온 애착의 대물림은 인식되었고, 마침내 멈추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막 12개월이 된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보다, 무엇을 물려주지 않을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나부터 비우기로 했다. 나의 상처, 무의식, 자동 반응, 그리고 나를 붙잡고 있던 '불안한 애착의 잔재들'을.
나의 애착 비움 실천
-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억누르던 방식들을 이제는 내려놓는다.
- 아이의 울음, 배우자의 말투에 반응하는 감정은 지금의 것인가, 과거의 반응인지 알아차린다.
- 엄마로서의 역할보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회복한다.
- 아이에게 과거의 내 상처나 결핍을 투사하지 않는다.
- 완벽한 엄마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 아이 앞에서 울어도 괜찮은, 살아있는 인간의 얼굴로 존재하려 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나를 짓누르던 매일 밤, 10분간의 명상을 실천했다. 호흡 하나에 집중하면서 떠오르는 감정을 흘려보냈다. 애써 무시하거나, 감정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고도 살아남은 나 자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다. 너는 이만큼 견뎠다."
애착의 비움은 나에게 진정한 의미를 선물했다. 애착을 비워내자 내면의 공간이 조금씩 넓어졌다. 그 공간에서 어린 나, 내면아이와 재회했다. 내면아이를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더 버겁고 두려웠고, 나는 여전히 공허했다.
보울비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아이는
양육자와의 초기 관계를 통해
'세상은 안전한 곳인지',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를
학습한다고 한다.
이러한 애착의 패턴은 무의식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되기 쉽다.
《비움 노트 : 감정의 물꼬를 트는 기록》
"나는 어떤 대물림을 끊기로 선택했는가?"
- 내가 자주 느꼈던 감정 중,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감정은?
- 내가 부모로 배운 것 중, 반복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나 말은?
- 아이 앞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엄마'라는 이름 아래 내가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마주하기 위해 필요한 비움은?
- 아이에게 채워주기보다, 내려놓음으로써 남겨주고 싶은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