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비움

숫자는 또 다른 족쇄가 되고

by 하야
숫자의 비움
30년 된 아파트에서, 첫 신혼을 맞이했었다.

"쏴아르 쏴아르—."

매미가 울었다. 한낮의 뜨거움이 걷히고, 여름의 끝자락을 알리는 듯한 청아한 울음이었다.


결혼을 기점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나는, 마음은 여전히 힘들었던 시절의 감정을 기억하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불현듯 떠올랐다. 안방으로 금빛 결을 드리운 한낮의 햇살이 들어오고 아무렇게 어질러진 이불을 개고 있을 때, 아빠가 남긴 빚을 어떻게든 내 인생에 들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악하던 날들이 문득 떠올랐다.


끝났는데도 그때처럼 불안해졌다.


숫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남겨진 숫자는 삶을 얽어매는 족쇄가 된다.
그것이 '빚'의 이름으로 대물림될 때,
숫자는 감정이 되고, 두려움이 된다.


아빠의 죽음이 남긴 것은 슬픔보다도 차디찬 숫자들이었다. 카드 빚, 체납세,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서류 더미 속에서 나는 '애도'라는 감정을 접어둔 채 살아남기 위한 생존술을 먼저 익혀야 했다. 그 이후, 나는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닌 삶을 옭아매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경계했다.



누군가에게 빚은 자산의 증식 도구이거나, 투자의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빚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가족의 해체, 불안,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불행의 상징이었다. 나의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고통스러운 흔적이었다. 나는 빚의 흔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결혼 후 신혼집을 고를 때, 주변의 시선과 남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신축 아파트 대신 단호히 구축을 고집했다.


엄마는 아빠가 남긴 카드빚의 무게를 감당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할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집을 잃었던 경험 또한 있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빚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휘청이게 하는지 이미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서 계속 살 거야?", "신혼인데 왜 그 집을 골랐어." 질문 속에는 '새 아파트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편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고른 집이 좋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베란다 너머로 산능선이 훤히 보였다. 자취 시절, 빽빽한 건물 틈에서 창문이라도 열면 건너편 주민과 눈 마주칠까 문을 닫고 살던 날들과는 달랐다. 이제는 커튼을 활짝 걷어도 마음이 놓였다. 내게 집은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살아내는 곳이었다. 내게 허락된 안락함은 '가진 만큼'이어야 했다. 신혼의 겉모습보다 우리가 어떤 삶을 함께 지어갈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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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집을 짊어지고 다닌다. 생존을 위한 필연이자, 동시에 존재의 무게다. 누구에겐 집이 안식처지만, 또 누군가에겐 벗을 수 없는 짐이 된다. 우리는 종종 숫자라는 굴레로 집을 짓는다. 숫자가 '빚'이 되는 순간, 안락함은 무게가 되고, 고정된 삶은 자유를 제한한다. 중요한 건 집을 짓는 방식보다 그 무게를 어떻게 감내하고 살아낼지를 스스로 묻는 일이다.


신혼집 선택은 숫자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 후로 의식적으로 빚을 만들지 않는 삶의 방식을 철저히 지켰다. 단순히 아끼고 모으는 것을 넘어 숫자가 나를 지배하게 두지 않는 나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숫자로부터의 자유, 나만의 실천법

- 소득이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받는 것을 피한다.

- 소비에 앞서 '필수'인지, 아니면 그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는 지출은 극도로 경계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미연에 방지한다.

- 이 소비는 '나'를 위한 것인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지 구분한다.

- '미래의 나'에게 빚지지 않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충분히 모아 일시불로 구매한다.

-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 휘청이지 않게 미리 재정적 여유를 확보한다.


나는 빚을 통한 자산 증식의 가능성을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대신 마음의 평화와 예측 가능한 삶의 안정을 얻었다. 이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자, 나는 비로소 삶의 본질적인 부분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숫자가 내 삶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도구로서 자리를 찾은 것이다. 결국 삶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숫자의 비움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다. 무엇을 채울 것인지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었고, 물음 끝에서 나는 나다운 삶의 형태를 정의하게 되었다.


과도한 빚의 대물림으로 실제 고통을 겪은
세대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인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외할머니의 빚을 친모가 상속포기
하여 11세 손자가 4600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된 사례도 있었다.
(동아일보, 2021)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부모의 빚을 알게 되었을 때
한정승인(상속받을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는 제도)을
할 수 있도록 민법의 개정이 추진되기도 했다.
(연합뉴스, 2022)


《비움 노트 : 숫자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1. 감정
나는 어떤 숫자(돈, 빚, 자산, 집 크기 등) 앞에서 불안함, 초조함, 혹은 자격지심을 느꼈는가?
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숫자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세요.



2. 원인
그 숫자는 왜 나를 불편하게 했는가? 그것이 나의 어떤 믿음, 경험, 혹은 타인의 시선과 연결되어 있었나?
예) 나의 가치관에 새겨진 '숫자의 의미'를 점검해 봅니다.



3. 선택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내 삶에 어떤 정신적 자유를 가져다주었는가?
예) 오래된 집을 택했다, 대출을 포기했다, 빚 없는 삶을 지향했다.
내가 지킨 철학은 무엇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평화를 안겨주었는지 적어봅니다.



4. 기록
앞으로 내가 지켜가고 싶은 숫자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비움의 유산'은?
예)
• "집은 수치가 아니라 쉼터다."
• "소유의 크기보다 존재의 밀도를 중시하자."
나만의 언어로 삶의 기준을 다시 써보세요.



5. 생각해 보기
• 내가 감당하기 힘든 재정적 부담이나 빚은 무엇인가?
• 현재 내 삶과 가치에 꼭 필요한 소비와 투자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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