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主)체자로의 흔적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로서의 회복

by 하야
주(主)체자로의 흔적

'이때까지 내가 했던 행위가 피해자의 비움이었다니..'


여느 때처럼 아이를 하원시키고 놀이터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는 아이가 노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아이가 소리쳤다.


"우와~ 비행기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비행기를 찾았다. 비행기를 함께 바라보며 웃는 아이의 웃음은 마치 한 송이 꽃 같았다. 구름 사이로 비행기의 꽁무니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서 활짝 웃는 아이야말로 진짜 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나는 피해자의 비움에 몰두하느라, 지금 이 순간 나를 살게 하는 흔적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가 아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차원에만 머물게 했다. 문득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모든 흔적은 나쁜 것일까? 그렇다면 나를 '살게 하는 흔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삶의 흔적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이 되어주었다.

새로운 안경을 쓰고 돌아보자, 나를 죽이는 흔적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가 남긴 무책임한 빚은 명백한 '유(有)형의 독'이었다. 할아버지의 집을 가득 채웠던, 주인의 온기 잃은 유품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소유의 무상함만 가르쳤다.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흔적이다. 엄마의 자살이 남긴 애착의 결핍과 가족들의 침묵은 내 정체성을 좀먹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죽이는 흔적'들의 목록을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 절대 만들지도, 받지도 않을 것들의 목록이다.

그렇다면 나를 살리는 흔적은 무엇일까?

내가 버렸던 것들의 기억을 더듬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매일 아침, 나를 깨워 배드민턴을 치러 나가셨다. 팔팔한 어린 나이에도 이른 아침 기상은 고역이었다. "싫어! 안 해!" 짜증을 내며 셔틀콕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셔틀콕을 주워 다시 쥐여주시곤 했다. 그런 손녀의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 웃던 희미한 표정이 그땐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할아버지의 묵묵한 뒷모습

그것이 할아버지만의 서툰 사랑 표현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배드민턴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건강한 습관을 물려주고 싶었던 말 없는 애정의 흔적이었다.



지금의 삶이 내 흔적이 된다면


나를(다음 세대)를 죽이는 흔적

▶ 유형(물질적)

- 과도한 빚, 채무, 보증(특히 가족 간의)

- 버는 것보다 더 쓰면서 빚지는 습관

- 감정 없는 유품(비워내지 못한 물건)

- 과잉 소비 습관, 허영 기반의 소비 패턴

- 집착적 수집물(가치 없이 남겨진 것)

- 안전하지 않은 주거 환경


▶ 무형(정서·심리·문화적)

- 부정적 신념

- 애착의 결핍 또는 왜곡된 애착

- 가족 내 비밀, 침묵, 금기

- 대화 없는 갈등 회피

- 가스라이팅, 조종 패턴

- 학대, 방임, 체벌의 정당회

- 성역 없는 간섭(감정적 경계 없음)



나를(다음 세대)를 살리는 흔적

▶ 유형(물질적)

- 정리된 유산, 비움이 담긴 공간

- 가족 앨범과 기록(삶의 이야기)

- 의미 있는 유물(편지, 일기, 가족사진 앨범)

- 적절한 보험, 상속의 준비

- '선택'할 수 있게 남겨진 여유 공간


▶ 무형(정서·심리·문화적)

- 안전한 애착관계

- 자기표현과 감정소통이 가능한 환경

- 나답게 살아도 된다는 허용

-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가치관

- 치유하려는 노력의 흔적

- 용서와 화해의 실천

- 감정적 독립과 경계 존중




“외상 후 자기정체성 손상”
(Disrupted Self-Identity)

트라우마, 특히 자살처럼 의미화하기 어려운 가족의 상실은 개인의 자기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며, 삶의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피해자로 인식하게 된다.
“나는 왜 살아남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죄책감(guilt)과 수치심(shame)을 증폭시키고, ‘살아 있음’ 자체가 부채감으로 느껴진다.


자살 가족의 생존자이거나, 가족의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이들은 종종 '피해자'로서의 비움에 몰두하게 된다. 특히 무형의 흔적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심리적 아픔과 감정의 상실에 사로 잡히게 한다. 그렇게 삶이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주체자'로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어떤 것을 선택하고 물려줄 수 있는지 조차 잊게 된다.


나는 흔적의 피해자가 아니라 흔적의 주체자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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