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혁명
무수한 흔적들
1992년 8월,
'낳음 당함'은 내가 원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낳음 당해서 강제로 살게 만든 그들을 원망했다.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이렇게 고통스러울 거면 낳지 말지."를 수없이 되뇌며 나의 유년기는 숱한 밤을 고통 속에서 잠들어야 했고, 자다가 죽어서 다음날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억지로 참기도 했다. 살아 있음은 지옥이었고 축복임을 믿지 못했다.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방식은 내 선택이 되었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우리는 의미 없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의미를 만들어간다.
엄마가 남긴 애착의 부재, 아빠가 남긴 빚, 할아버지가 남긴 물건의 공허. 아이러니하게, 엄마의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빚'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애착의 부재와 빚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한 사람의 삶과 가정을 서서히 잠식시켰다.
어느 날, 무심코 켠 TV 뉴스에서 낯익은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채무의 대물림', '방임', '학대',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 앵커의 무감한 목소리 뒤로, 나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것은 결코 나만의 특별하거나 유별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흔적의 대물림과 싸우고 있었다.
내가 바꾸지 않으면, 흔적은 다음 사람을 통해 계속된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내가 싸우지 않은 문제를 또 짊어진다. 내가 끝내야 할 짐을,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가 이어받는다. 대물림을 끊는다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닌 책임이다.
조용한 혁명
"남들은 다하는 이것,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합니다!"
귀를 막아도 광고는 들끓는다. 현대 사회는 물질 풍요라는 이름 아래, 원치 않는 유•무형의 흔적들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었다. 미디어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속삭이고, SNS의 보여주기식 삶은 금전 개념의 왜곡을 만든다.
평균이라는 보이지 않는 잣대가 들이밀어지고, 모든 것을 획일화된 틀에 끼워 맞추려 발버둥 친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그저 평균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수많은 밤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스스로를 선택할 주체성을 앗아간다. 소비 없이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가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결핍의 흔적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의식적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죽이는 흔적을 거부하고, 살리는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압박에 맞서는 가장 조용하고도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다.
혁명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오늘, 나를 괴롭히는 하나의 흔적을 돌아보고, 나를 살리는 하나의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더 이상 대물림의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나의 흔적을 선택하는 주체자다. 이 조용한 혁명을 시작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일 때, 다음 세대에게 다른 종류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