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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Jan 26. 2021

인재

人材, 人在, 人災

꽤 지난 이야기죠. 때는 중국 주재원 시절, 열정과 스마트가 제 삶을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상해 출장을 가서 회의 중이었는데, 천진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생산담당 팀장님이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협력업체에 바코드 라벨(생산 라인에서 스캐너로 실적 처리하기 위해 붙이는 부착물) 출력속도가 너무 느려서 라인이 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문제였지만 그런 일은 중국 공장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라 왜 저에게까지 전화했는지 의아했죠.

사실은 그 뒤가 더 문제였습니다. 제가 자리에 없으니 생산팀장은 우리 부서에 해결하라고 직접 지시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저희 부서의 직원이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 문제는 중국의 네트워크 문제이니 저는 모르겠습니다."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생산팀장에게 했던 대답을 반복하네요. 저는 그래도 말귀 알아먹는다고 상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서요.

‘회사 내에서는 정상적으로 출력이 되고 있으니 시스템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협력업체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발생하는 문제이니 그 쪽에서 해결해야 한다.'

목소리에 억울함마저 배여 있었습니다. 이미 생산팀장이 다그쳤을 게 뻔햇습니다. 이제 머리에서 발화할 지경이었지만 전화로 소리 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당장 네트워크 담당자를 출장 보내고, 현장에서 업체 직원들과 문제를 같이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하루를 겨우 꾹 참고, 다음날 그 담당자를 불러 회의실에 앉았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왜 안 부르나 고민했을 것이 뻔했고, 내가 왜 불렀는지도 알고 있는 눈치입니다.

“왜 불렀는지 알지?”

“네, 그런데 그건 그 협력업체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잖습니까?”

억울함이 목소리에 가득합니다. 툭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럼 니 일은 뭔데?”

저도 잘 압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직장인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속 시원한 답을 할 수 있다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죠. 대다수 직장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시 받은 일을 주로 하게 되죠. 역시나 마주 앉은 직원의 얼굴에도 당혹감만 스쳐갔고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럼 왜 우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냐?”

“우리부서는 프로그램이 문제없이 돌아가면 되는 거잖습니까? 이번 문제는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업체가 사용하던 PC가 오래 되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우리가 라벨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이유가 뭐냐? 협력업체에서 잘 출력해서 제품에 제때 부착해서 생산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 아니냐?”

“네. 그렇죠.”

“이번에도 우리 쪽에서 내려가서 고장 난 허브 문제점 찾아냈고, 노후화된 PC도 영향이 있다는 걸 찾아냈잖아.”

“네. 그렇긴 해도, 그 일도 사실은 그 업체의 인프라 인력들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답답함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잠시의 침묵 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 생산이 안 되면 누가 영향을 받냐? 우리 생산이 깨지지 않냐?”

마주 앉아 녀석은 아직도 입술을 앙다물고 있습니다. 당신이 상사이니 들어는 주겠으나 납득은 안 간다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죠.




두 가지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되지도 않는 중국어와 바디 랭귀지, 그림으로 잔소리를 시작했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소


- 구덩이에 소가 빠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길 중간에 누가 팠는지 모를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큰 소가 한 마리 빠졌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할 것도 없이 소를 구덩이에서 꺼내는 것이겠죠. 그 다음은? 왜 소가 빠졌는지? 더 나아가면, 왜 거기 구덩이가 있었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분석이 끝나고 별 다른 특이 사항이 없다면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덩이를 막아야 할 겁니다. 

특별할 것 없는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 당연한 것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로 든 직원의 사례도 "구덩이에 빠진 소"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당장 소를 구덩이에서 꺼내야 하는데, 그 전에 빠져나갈 이유를 찾은 다음, 우리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구덩이에 물이라도 차 있으면 소는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생각보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많이 범합니다. 소를 꺼내지 않고 분석만 한 다음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는 것을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저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물론 일의 특성에 따라 변호사 같은 직업 군에서는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직업에서는 위의 세 가지를 다해야 일이 완성됩니다. 거기에 더해, 순서도 꼭 따라야 합니다.

소를 꺼낼 생각은 하지 않고 분석부터 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황당한 경우는 빠져있는 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묻어버리는 경우일 것입니다. 또, 가장 많이 실수를 하는 부분이 두 번째 단계를 건너뛰는 경우입니다. 다른 소가 지나가다 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표시를 세우는 임시 대책을 취하고, 거기에 왜 구덩이가 있었는지 분석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맨홀을 묻으려 했다거나 지하철 공사 중이었다면 이런 확인 없이 구덩이를 메꾸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구덩이를 파야 할 겁니다. 더 심할 경우, 누군가 그 구덩이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석이나 확인 없이 구덩이를 메꾼다면 비극이 벌어지겠죠. 이 세가지를 순서대로 모두 수행하는 것이 쉬워 보입니다. 그런데 제 직장생활 경험에 이건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하는 사람은 ‘인재’에 가까웠습니다.


오래된 글을 다시 끌어올린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는 지금 실천하고 있는가? 알면서도 사라져가는 열정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체력에, 불어나는 핑계거리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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