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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Apr 25. 2019

꽃이 졌으니 그림이 필요하지!

사진과 그림은 시간을 붙잡기위해 만들어졌다

벚꽃이 막 필때 시작했는데, 출장 일주일 다녀 오다보니, 벚꽃 다 져서야 완성


회사에서 친한 후배가 점심시간을 쪼개 학원을 다녀 그린 결과물을 페이스북에 글과 같이 올렸습니다. 무심코 댓글을 달았습니다. 

"꽃이 졌으니 그림이 필요한 시간이다."
김씨가 학원에서 그렸다는 벚꽃그림

제가 사는 창원은 벚꽃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4월 초순이 되면 누리는 호사가 하나 있습니다. 벚꽃 가득한 길을 드라이브하며 출근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꽃으로 아치가 만들어진 길 아래를 걷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눈으로 쫓았습니다. 눈이 바닥을 향하자, 갓 떨어진 싱싱한 꽃잎 주변으로 사람들의 발에 밟힌 떨어진지 시간이 흐른 녀석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도로에 떨어진 꽃잎과 나무에 피어있는 꽃.
본질은 변한게 없는데 방금 전까지 찬탄의 대상이었다가,
치워야할 대상으로 바뀌는 혼란스러움

혹시 사람에게도 이런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을까?
꽃이나 사람이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어디에도 원래부터 치우고, 버려야 할 존재는 없다


떨어진 꽃잎은 단지 치워야할 대상인가?

어릴 적, 우리 집에는 그 시절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카메라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필름이 들어갔기 때문에 사진 한 장을 찍는 것이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제 나이였을 무렵, 명절이면 삼각대를 세우고 가족사진을 매년 찍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낡은 카메라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잠시 유행하고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독점할 즈음, 우리 가족은 구식 수동카메라의 존재조차 잊었고 신기하게도 함께 가족 사진을 찍는 행위조차 같이 망각해 버렸습니다. 언제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이상하게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더 줄어버렸습니다. 개, 고양이, 음식사진은 스마트폰에 넘쳐나는데 사람이 함께하는 사진은 어쩌면 더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한, 부모님의 노년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치아라, 늙은 얼굴 찍어서 어데쓰노


건강이 나빠지시기 전에도 어머니는 어쩌다 휴대폰으로 사진 한장 찍으라치면 손사레를 치시며 사양하셨습니다. 내 얼굴에도 주름이 생기고 나이가 들자 저도 점점 사진이 찍기 싫어집니다. 이제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님 사진이 왜 남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후회가 됩니다. 다른 말씀은 그렇게 안 듣고 살았는데, 왜 유독 그 말은 곧이곧대로 듣고 따랐을까요?

그림은 자신의 젊음을 잡아 두고 싶었던 권력자들의 초상화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림도, 사진도 근본적으로는 시간을 잡는 도구입니다. 


지난 주, 시골집에 갔습니다. 집 뒤에 대나무 밭과 작은 산이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한 번도 오를 엄두를 못내셨던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뒷산에 가보겠다는 저를 따라 나오십니다.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겨우 부축해 올라가 앉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내들었습니다. 손사레를 치실 알았는데, 환하게 웃으십니다. 그렇게 잡아야 할 시간이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아들도 늙은 어머니도 이 순간을 잡고싶었다


"꽃이 졌으니, 그림이 필요한 시간이다."

후배가 꽃이 필때 시작해서 꽃이 져서야 완성된 그림을 얻었던 것처럼, 꽃이 피어 있을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어느 날, 예고없는 비에 꽃이 떨어졌을 때, 그림을 보고 그때를 추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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