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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가방

고수의 연장은 다르다

by 현실컨설턴트

“초짜구나!!!”

컨설턴트는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그때마다 새로운 구성원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는 규모가 좀 있어서 프로세스 컨설팅 하시는 컨설턴트만 수백 명이 넘습니다. 그렇다 보니 출장지에서 처음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첫 미팅에서 복장은 대부분 정장이라 옷으로는 한번에 알아보기 어렵지만 바로 경륜이 나오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출장 가방이지요.

초보는 일단 거대한 백팩이나 캐리어를 끌고 옵니다. 가방 브랜드도 누구나 아는 **나이트나 *미 같은 누구나 아는 브랜드지요. 커리어가 오래 된 컨설턴트의 출장 가방은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일주일 출장을 가정했을 때 고수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죠. 현지적응형과 라이프사이클형입니다. 현지적응형은 겉으로만 봤을 때 지방출장을 온 건지 그냥 출근한 건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실밥과 보풀이 가득한 노트북 번들 가방이 전부입니다. 안에는 노트북(무거운 노트북 전원도 안 가지고 다니고 라이프사이클형한테 빌려 씁니다)과 4세트(화, 수, 목, 금용)의 팬티와 양말만 들어있죠. 뭔가 불편함을 느끼면 근처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가장 싼 물건을 사서 그때그때 모면합니다.라이프사이클형은 가방 크기와 개수, 브랜드가 다 다릅니다. 자신에 맞췄기 때문이죠. 오랜 지방 출장 경험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사이즈와 기동성을 가졌죠. 저는 라이프사이클형입니다. 오래도록 2개의 가방 조합을 찾았습니다. 옷과 세면도구 및 제가 평소에 애용하는 아이템을 넣을 18인치 캐리어와 그 위에 꽂을 수 있는 슬림한 서류 가방 세트이지요.


내 출장가방 세트


장기 출장에서 가장 힘든 날은 출장지에 가는 날과 돌아오는 날입니다. 모든 짐을 다 가지고 다녀야 되니까요. 그래서 캐리어는 적당한 크기에 바퀴가 잘 굴러야 합니다. 하지만 아침에 집이나 호텔에서 나오면 가방을 열 일이 없어야 합니다. 중간중간 캐리어를 열고 닫는게 얼마나 짜증나고 힘든지 출장 다녀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그래서 노트북이나 필기도구 처럼 근무시간에 자주 사용할 아이템을 담을 작은 가방이 하나 필요합니다. 20년의 시행착오 끝에 사진의 세트가 완성되었지요.

그게 뭐 20년이나 걸릴 일이냐고요. 매장 가서 가방 2개 사오면 되는 일 아닌가요? 그게 그렇지 않더군요. 마음에 드는 꼭 맞는 조합은 없었습니다. 대량 생산되는 물건은 대중성을 띄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모든 기능을 가방 하나가 다 가져야 하도록 보통 만들어지더군요. 그렇다 보니 애매했습니다. 특히 위에 얹을 서류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18인치 캐리어에 부착할 수 있는 형태로 나온 가방은 드물었고, 있어도 크기가 딱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서류가방을 산 다음에 멀쩡한 가방을 칼로 잘라 부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트가 완성되고 나서 출장이 조금 더 즐거워졌습니다.




프로세스 컨설팅이 항상 새로운 이유


한동일 작가가 쓴 ‘로마법 수업’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법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는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저의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늘 새로 지은 밥과 반찬으로 상을 차리셨지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그게 수업에 임하는 선생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매번 새롭게 느껴지도록 강의를 준비하려는 노력, 그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구절을 보고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습니다. 프로세스 컨설팅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장님들에게 제일 많이 받은 챌린지가 ‘원래 있는 프로그램 복사하면 되는데 사전에 컨설팅이 왜 필요하고, 돈이 왜 이리 비싸냐?’였습니다. 순간 숨이 턱 막히죠. 솔직히 어떻게 설명할지 엄두가 안 나거든요. 저 이야기를 알기 전에는 기술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졌죠. 어머니의 밥상 이야기를 하면 미묘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물론 바로 수긍하시지는 않지만, 들으실 준비는 보통 되십니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본질로 본다면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그것을 고객에게 팔고, 돈을 받고, 부품을 사고, 산 부품에 대해 값을 치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방법은 산업에 따라, 회사의 규모에 따라, 오너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사고, 팔고, 만드는 것을 기본만 처리하고 관리하겠다면 회사도 집에서 쓰는 가계부 같은 장부만 쓰면 됩니다. 출장 가방으로 비유한다면 그냥 검은 비닐봉지에 노트북이랑 속옷, 세면도구 넣어서 들고 다니는 거죠. 간혹 찢어져서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할겁니다. 조금 더 발전하면 기업이 필요한 공통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솔루션을 사서 쓸겁니다. 시중에 파는 일반 출장가방을 사서 쓰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우리 회사만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프로세스 컨설팅을 받고, 그 결과에 기반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 출장가방 세트처럼 말이죠.




고수의 연장


얼마 전에 집에 배관이 막혀서 인터넷을 통해 업체를 찾아 연락했습니다. 다음 날 젊은 사람이 깔끔한 공구통을 들고 왔어요. 무언가 전문가 냄새가 나고 잘 정리된 공구통 안을 보니 믿음이 갔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집 안을 들쑤셨지만 결국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어쩔 수 없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혹시 다른 집에 비슷한 일로 사람을 부른 적이 없는지 물었죠. 마침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옛날 중국영화에서 쿵후 사부 같은 분이 낡은 공구통과 이상하게 생긴 갈고리 비슷한 쇠줄을 들고 왔습니다. 첫 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상한 모양의 쇠줄로 몇 군데를 쑤시더니 금방 원인을 찾고 해결했습니다. 저는 그 쇠줄이 탐이 났습니다. 어디서 구매했느냐고 물었더니 시중에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 분이 이 일을 30년 넘게 하면서 스스로 고안하고 개선한 결과물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각 부분이 근처의 오래된 아파트에 적합하게 제작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프로세스 컨설팅의 수 많은 방법론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참 뜨거운 chatGPT같은 기술도 마찬가지지요. 방법론이나 기술은 근본적으로는 젊은 배관공이 가진 신참 공구통일 뿐입니다. 그것을 활용해 고수용 전용 연장을 만드는 것은 배관공의 기량 차이죠. 그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려면 먼저 내 안을 살피고 내 컨설팅 서비스에 날개를 달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양한 기술과 도구를 섞고 조합해 ‘고수의 연장’을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자신만의 연장을 만들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생각과 손을 거쳐서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공구의 기본 재료는 공구상가에서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조합과 변형에 스스로의 생각이 들어가야 실전에서 유연성이 생깁니다.

젊은 배관공이 가졌던 새 공구세트만으로는 현장에서 자주 곤란함을 겪을 겁니다. 누구라도 어느 정도의 돈만 지불하면 가질 수 있는 도구이고, 그것으로 쌓을 수 있는 노하우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신만의 도구를 가졌던 배관공은 다양한 상황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자신이 만든 특화된 도구의 힘도 크겠지만, 그 도구를 만들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시의 적절하게 꺼내 사용할 테니까요.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라도 도구를 그 자리에서 수정해서 사용하겠죠.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해서 말하면 임기 응변능력이고, 기업으로 따지면 기민성(Agility)이 높다고 하죠. 이런 능력을 확보하려면 자신이 필요한 것을 정확히 알고, 이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컨설턴트도 기업도 이 능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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