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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그림

아침마다 총을 쏘는 이유

by 현실컨설턴트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어느 강연 플랫폼에서 ‘조세핀 킴’이라는 강연자가 발표한 내용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년의 그림.png 학대받던 어느 소년의 그림


그 분이 강연 중에 그림 하나를 보여 주셨는데 그 그림은 학대를 받은 아이가 자신의 가족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에서 가장 큰 것이 엄마, 중간 크기가 형, 보일 듯 말듯 작게 그렸지만 위축된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림만 보고 해석하자면 엄마가 가장 심하게 학대하고, 형이 그 다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그림은 아이가 무의식 중에 바라는 판타지였다는 거죠. 왜 판타지냐고요? 사실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그리지 않은 것이죠. 아버지는 가정 폭력의 시발점이자 원흉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두 아이를 때리고, 형이 다시 자신을 학대하는 구조였던 것이죠. 충격적이었지만, 큰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그림이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듯 했습니다.

사람은 가장 무섭고 껄끄러운 것은 숨깁니다




아침마다 총을 쏘는 이유


제가 PM(프로젝트 리더)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에는 아침 미팅이 중요합니다. 보통의 미팅처럼 오늘 해야 할 일과 진행 일정 등을 같이 리뷰하고 문제점을 공유합니다. 매일 하다 보면 이런 얘기는 5분 안에 다 끝이 납니다. 그 다음 10분은 잡담 시간입니다. 그냥 잡담을 하라고 했더니, 어색한 침묵만 몇 분 흐르다가 끝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방식을 적용해 봤죠.


총쏘는 어른이.jpg 총 쏘는 어른이


어느 지방 프로젝트에서는 사업장이 공단에 있다 보니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 이상 커피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스카페 커피머신을 샀죠. 그랬더니 캡슐 비용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날 장난감 총을 주문했습니다. PPT로 과녁도 그렸죠. 일정 회의가 끝나면 총을 쏘는 겁니다. 뒤에서 2명은 커피캡슐 구매에 기부했죠. 이야기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만원짜리 총 하나가 웃음과 진짜 소통을 선물했습니다.

한 번은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1번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1번을 아침에 같이 듣는 겁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영화나 드라마, 책까지 연결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 길던 잡담시간 10분이 점점 짧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그 마지막에 업무 협의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옛날옛적 흡연자가 많을 때, 흡연장에서 중요한 업무 얘기하다가 회의로 연결되던 것처럼요.

정작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각 영역 간 첨예한 문제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숨긴 채 변죽만 울리다 끝나곤 했죠. ‘이래서 안돼요. 저래서 안 돼요.’ 하지만 정작 가장 무서워하는 부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분의 인터뷰에서 그 해답을 찾았죠.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면, 크고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없어요

배달의 민족 김봉진 의장이 한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죠. 지난 밤에 본 드라마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없는 사이가 민감한 업무 이슈를 어떻게 논의하겠습니까? 그건 마치 소년의 그림에서 그려지지조차 않은 아버지 같은 존재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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