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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과 파워레인저

군자의 조건

by 현실컨설턴트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젊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여성이 바로 그 전날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점이었죠. 더 충격은 그가 남긴 유서의 내용이었습니다.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가장 행복할 때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는 어릴 적부터 노벨상을 받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는 최고의 순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했던 겁니다.

파워레인저

또 한 명의 젊은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파워레인저’라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TV로 파워레인저를 보던 그는 911로 전화를 걸어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파워레인저가 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전화를 받은 911 콜센터 직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파워레인저는 실제로 없어.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 있단다. 그곳은 FBI라는 곳이야.”

이 대답을 곧이곧대로 믿은 소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마침내 FBI 요원이 됩니다. FBI에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911테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아요.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그는 이미 테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 관련자를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항을 상부에 보고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러한 사실을 폭로합니다. FBI의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가 된 겁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니까요.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용기를 높이 샀습니다. 그리고 그는 2명의 다른 여성 내부 고발자와 함께 2002년 타임(Time)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앞서 소개한 노벨상 수상자처럼 단지 FBI 입사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어땠을까요? 대다수의 직장인처럼 행동했을 겁니다. 내 보고가 묵살되었고, 그 결과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더라도 숨죽이고 주변 상황을 살폈을 겁니다. 대다수가 모른 척했을 것이고, 기껏해야 울분과 죄책감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정도였겠죠. 하지만 그는 지구를 지키고 이롭게 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큰 목적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컨설턴트로 살다 보면 일시적인 우울증에 빠지는 시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직장인의 문제이기도 하죠. 단지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 현상이 너무나 극명하다는 것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겠죠. 여지없이 그 후배 녀석에게도 그 증상이 찾아왔나 봅니다.


“피엠님, 너무 우울해요.“

“왜? 프로젝트 잘 끝나고 철수한다며…”

“네, 근데 마음이 너무 몰랑몰랑해요. 이슈 없애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다 해결되니 버려지는 느낌이에요. 마음이 좀 그러네요. 나는 뭘 위해서 그랬는가? 허탈해져요.”

“나도 PI(프로세스 혁신 컨설팅, 보통 시스템 구축 전에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한다) 끝내고 나왔는데 나 없이도 구축 프로젝트가 잘되니까 좋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더라.”

“엇, 딱 그 마음이에요. 내 빈자리가 티가 안 난다는 게. 그냥 다른 사람이 바로 대체 가능하다는 게 기분이 별로예요. 늘 이 시기에는 이 감정이 와요.”

“참 희안한게 프로젝트가 잘되고 결과물이 좋을수록 더 그렇더라. 결국 내 것이 아니니까. 우리 회사 것도 아니고, 그 회사 것이고, 그 회사 직원이 빛나야 하니까. 이게 우리 업의 업보 같은 것 아닐까?”


원래 그런 거라고 힘내라고 말을 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날 때만 되면 느끼는 허탈함은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주문처럼 중얼대는 논어 구절이 있습니다.

人不知 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불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해석하면,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에는 군자에 대한 내용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아마도, 공자가 이상적인 인간을 '군자'라 칭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논어를 현대식으로 잘 팔리게 제목을 뽑는다면, 아마도 '군자가 되는 법'이 아닐까요? 군자에 대한 많은 구절 중에서도 이 구절은 제가 군자의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미생'이란 만화에서 '윤태호 작가'는 이 구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일을 한다. 회사에 나왔으니 일을 한다.'

당연한 말이고, 저게 뭐가 어렵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 앞에 생략된 부분을 붙여 넣으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평가에 무관하게),

(상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힘들어지더라도),

꼭 해야 될 일이라면, 그 일을 우리는 그냥 해왔을까요? 저는 자신있게 'Yes'라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저에게 이 구절을 해석하라 한다면 저는 이렇게 해석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주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이 군자다


군자라는 단어는 ‘프로’로 살짝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겠네요.




미생에 이 구절과 반대의 장면이 또 나옵니다. 바둑을 배우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너 손 좀 보자."

"왜?"

"바둑 두는 사람은 손이 중요해. 바둑 TV에 손만 나오잖아."

"사범님이 그러셔?"

"아니."

"그럼 누가 그래?"

"내가. 호호호."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얼굴이 발개졌었습니다. 컨설턴트는 고객이 잘 일할 수 있도록 돕고 빛나게 하는 역할인데, 무대에서 스스로 빛나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았거든요. 때로는 그 마음을 끝까지 누르지 못하고 내가 빛나려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때로는 제 기준에 열심히 하지 않아 보였던 고객이 마지막 발표를 멋지게 하고 회장님이나 사장님의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을 씁쓸하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중얼거렸던 한마디.


人不知 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불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당신의 주문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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