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컨설턴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실컨설턴트 Mar 14. 2023

그 남자가 고속승진한 까닭은?

선풍기와 엑스레이

어느 비누공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비누를 포장하는 기계가 가끔 오작동으로 비누가 들어있지 않은 빈 케이스가 출하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경영진은 이 문제를 외부 컨설턴트에게 의뢰했죠. 컨설턴트들은 사무실을 잡고 현장 라인을 둘러본 다음, 여러 가지 해결책과 리스크를 나열해 최종 해결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이 권고한 방법은 엑스레이 투시기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엑스레이로 빈 비누 케이스를 골라내는 거죠. 문제는 돈인데 컨설팅 비용 1억이 이미 발생했고, 엑스레이 투시기 구매에 6억, 인건비 7천 만원이 추가로 발생하게 생겼습니다. 경영진은 이 방안을 도입할지 말지, 도입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는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장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연락이 옵니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간 경영진은 그만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갓 들어온 신입사원이었고, 그는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 포장 기계에서 나오는 빈 케이스를 날려버리고 있었습니다. 선풍기는 5만원짜리였죠.


선풍기와 엑스레이


우리는 종종 유행을 따르다가 본질을 놓치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아마도 컨설턴트들은 비누 케이스 속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에 꽂혀서 그 주위를 빙빙 맴돌았을 겁니다. 그래서 엑스레이 투시기가 필요했겠죠. 반면, 신입사원은 '빈 케이스를 제거하는 것'이 본질이라 생각했습니다. 비누 케이스 속이 비어있다는 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던 거죠.




여기까지는, 한참 제가 혁신에 빠져 있을 때 종교처럼 숭배했던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면 선풍기를 통한 해결책이 본질에 닿아있고 통찰력 넘치는 해결책처럼 보입니다. 엑스레이 해결책을 제시한 컨설턴트는 그냥 쓰레기죠. 그런데 이 바닥에서 컨설팅 일을 오래하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선풍기라는 빈 비누 케이스 제거 시스템이 개선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성공 사례가 만들어낼 회사 분위기와 문화입니다.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전개해 볼게요.


그 남자의 고속승진


선풍기를 가져온 신입사원은 임시 인턴에서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됩니다. 그는 계속 선풍기 솔루션처럼 간단하지만 섹시한 해결책을 고안해 냅니다. 성과는 쌓이고 고속 승진합니다. 이에 고무된 다른 사람들도 이 물결을 타려 합니다. 그러자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그 중 몇 개는 실제 성과를 만들어냅니다. 분위기는 더 고조되고 회사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현상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효과를 어필하는 보고서가 난무하고 그 기대 효과를 합쳐보니 회사 가치의 10배가 넘습니다. 그런데도 실제 실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품질도 좋아지지 않았죠. 더 큰 문제는 비누 생산라인입니다. 간단한 아이디어를 구현한 수 많은 잡동사니가 라인 주변에 가득해 작업에 방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 즈음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됩니다. 소비자의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비누 자체의 품질이 판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거죠. 대응하기 위해서 새로운 불량 범주를 만듭니다. 성형이 잘못되어 모양이 조금 이상한 비누나 용량이 모자라거나 넘치는 비누가 이제는 불량이 됩니다. 선풍기 시스템은 이런 유형의 불량을 골라낼 수 없었습니다. 반면 바로 옆 경쟁 회사에서는 엑스레이 투시기를 이미 도입했고, 그 외에도 비누 무게를 체크하기 위한 전자저울도 엑스레이 투시기 옆에 설치했습니다. 첨단 기기들을 라인에 깔끔하게 배치한 것이죠. 엑스레이 투시기 기능도 계속 개선하여 단순히 비누 케이스가 비었는지 체크하는 일에서 비누에 이물이 섞여 있는지도 검출하게 됐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고객만족, 고객관리 같은 개념이 한참 강조될 때 자주 인용되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잘 알까?


어느 날, 고가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 관리) 시스템 도입을 고민하던 CEO가 한 호텔에 체크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는데 프런트 직원이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언제 이 호텔에 묵었는지 언급하며, 다시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 CEO는 프런트 직원에게 어떤 CRM 시스템을 쓰고 있길래 고객 정보가 이렇게 잘 관리되고 있느냐고 감탄하며 물었습니다. 그 직원의 답은 의외였죠.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방금 손님을 모시고 온 택시 기사님이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죠. 생각해 보니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동안 택시 기사님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얘기하자 기사님은 자연스럽게 물었습니다.


“손님, H 호텔은 처음이신가요?”
“실례지만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흡연은 하시나요?”
“지난번에 어떤 객실에 묵으셨나요?”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호텔 측이 궁금해하는 내용이 섞여 있었던 거죠. 그리고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손님의 짐을 벨보이에게 넘기면서 그 정보를 전달하고 벨보이는 프런트에 다시 주요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10달러의 팁을 지불했습니다. 수십억이 들어야 가능할 일을 10달러의 팁으로 해결한 것이죠. 그런데 ‘택시 드라이버 CRM 체계’는 지금도 잘 작동되고 있을까요?
 ‘선풍기를 활용한 빈 비누 케이스 제거 시스템’과 ‘택시 드라이버 CRM’은 길게 보면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장은 섹시해 보이죠.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섹시한 미봉책을 과도하게 칭찬하고 새로운 기술 도입을 계속 미루면 말도 안 되는 싸구려 미봉책이 넘쳐나는 회사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저렴해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이 곡예 같은 균형을 잡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내 목적의 본질은 명확히 하되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도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본질을 깊게 고민하고, 이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사용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효율을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싸고 효율적이지만 과연 몇 년 후에도 유효할까? 이 분야에서는 단순한 해결책이 어울리지만 다른 사업 분야에서는 근본적인 해결 방안과 신기술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사례로 든 호텔이 택시 드라이버 CRM을 아직 고수하고 있다면, 아마도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겁니다. 일단 요즘 택시 안에서 손님과 얘기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으로 목적지를 입력했고, 계산도 자동으로 하니까요. 그리고 코로나 이후 좁은 공간에서의 대화는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택시 CRM 체계로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고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손님이 직업을 속여 말할 수도 있고, 택시 기사님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고객의 모든 투숙 정보는 물론 어떤 방을 선호하는지, 어떤 계절에 자주 찾는지, 투숙 중 어떤 요구를 했었는지 데이터가 말해주는 시대입니다. 거기에 더해 스마트키 서비스를 사용하면 프런트를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운 좋게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았더라고 거기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내 목적에 맞는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고 발전 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공상과학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기적으로 과학기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한다


다 읽고 보니 황당하다고요? 어쩌라는 건지 모르시겠다고요? 맞습니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수준이죠.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기업과 몰락하는 기업의 운명이 엇갈리겠죠. 공식처럼 답이 정해져 있다면 실패할 기업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회장님이 필요한거죠.

매거진의 이전글 회장님이 최신 아이폰을 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