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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Mar 15. 2023

럭셔리한 인생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아라

딱 한번만! 딱 한번만, 그게 모여서 사람이 변하는 거야.
 - 이태원클라쓰 中 박새로이의 대사


"아니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네 명의 심사관이 일제히 제 얼굴을 쳐다 봤습니다. 8개의 눈은 묻고 있었습니다.

'너 뭐하는 놈이야?'

'미친거 아냐?'

'쟤 왜 저러지?'

저는 진급심사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진급하시면 어떤 부분을 바꾸시겠습니까?"

10분 정도 진행된 면접에서 다행히 큰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우호적인 분위기였고 그대로 마친다면 진급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마지막 질문만 없었다면. 하지만 그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항상 마지막 질문은 저 질문이었으니까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수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준비한 무난한 답을 할까, 당황한 것처럼 머뭇거릴까. 제 선택은 지혜롭지는 않았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까저라면 고객들의 눈이 신경 쓰였을 것 같은데요." 

팀장님이 물었습니다.

"두려웠죠저도 인간인데 왜 신경이 쓰이지 않았겠습니까?"

2015년 즈음에 12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역할을 했습니다딱 놀기 좋은 규모지요. 3명씩 나누면 4팀이 만들어집니다토너먼트가 가능한 최소의 규모입니다. 6개월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최대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스크린 야구족구실내양궁보트경주처음에는 우리끼리 하다가 나중에는 고객까지 끌어들였습니다. 프로젝트 중간보고, 종료보고 때도 장남감 총으로 사격대회도 하고 경진대회도 했죠. 그 과정을 정리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 마지막에 팀장님이 던진 질문이었죠. 어떻게 아무런 저항이 없었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보수적인 집단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자잘한 사건은 항상 있었고 가장 큰 저항은 종료보고 때였습니다. 팀원들을 독려하며 종료보고를 준비 중인데, 고객사부서장이 발표 전날 저를 불렀습니다.

"PM종료보고 때 준비하신 거 안 하면 안 될까요잘 되면 좋은데 발표 분위기가 안 좋으면 일도 못하면서 노는 것만 고민했다 할거 아니에요.”

저는 또 과격한 선택을 했습니다.




해가 바뀌고년 초에 진급자 발표가 있었습니다같이 프로젝트를 하던 멤버 중 몇몇은 승진해서 축하 회식에 갔습니다수선스럽게 1차가 끝나고 의례히 찾아오는 혼란의 시간이 왔습니다혼란한 틈을 타집에 가려고 발끝을 집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팔짱을 꽉 낍니다신입사원 시절 같이 일했던 선배였습니다.

"넌 오늘 나랑 둘이 한잔 더하자."

대답할 틈도 없이 선배에게 끌려 갔습니다마주앉아 술을 한참 더 먹고 정신을 놓기 직전에 선배가 물었습니다.

"왜 그랬냐?"

아마도 면접장의 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나 봅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진급이 얼마나 큰지 몰라도짧은 시간이라도 저 스스로를 속이기 싫었어요지금까지 많이 속이고 살았으면 됐잖아요."

선배가 바로 쏘아 붙입니다.

"그래지금까지 속이고 살았는데 한 번만 더 참으면 되잖아."

저는 그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그냥 미소만 지었습니다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한 번만한 번만 하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진급이 걸렸으니 이번 한 번만고객이 저렇게 걱정하는데 다음에그랬다면 저는 적어도 회사 그만둘 때까지 나답게 살지 못할 겁니다아직까지 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들이 애정에 가득 찬 조언을 합니다.

"왜 그랬어?"

"고객들은 나중에 뭐라 할지 몰라튀지 않는 게 좋아."

맞습니다저도 제가 하고 있는 행동이 바른 것인지객기인지 판단을 못하겠습니다순간순간 바뀝니다어제 밤에도 그냥 한 번 참을 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누군지 몰랐지만뉴스나 영상으로 볼 때마다 참 멋지게 나이 드셨다고 생각했던 영감님이 계십니다어느 날, 그 영감님 사진이 SNS에 도배되었습니다


칼 라거펠트(1933-09-10 ~ 2019-02-19)


돌아가셨더군요그 분 이름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칼 라거펠트', 그 분의 검은 사진 아래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럭셔리다


그날 새벽 술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답하지 못하고 미소로 얼버무렸던그때 받아 쳐야 했을 대사를 이제는 찾은 것 같았습니다하지만 조금은 지혜로워져야겠죠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서높은 분들을 놀래 키지 않는 대답도 있을 테니까요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나오는 날회사 정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갑자기 옆에서 "합니다놀라서 돌아보니파트너였던 고객님 중 막내가 지게차 작업을 하다 저를 부른 겁니다.

"수석님많이 배웠어요일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확신했습니다. 과격하고 지혜롭지 않아도 그 선택들이 틀린 것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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