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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May 25. 2019

차를 누가 긁었습니다

진짜 우리 것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으악! C~"


기분좋게 운동하고 나와 차를 타려다가 저도 모르게 비타민C8을 찾게 되었네요.


아침부터 비타민을 찾게 했던 본네트에 긁힌 자국


얼마 전, 큰 맘먹고 좋은 차를 샀습니다. 비싼 몸값이니 저절로 애지중지 하게 되더군요. 귀한 몸에 어디 스크래치라도 날까 조심조심 타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대략 1년이 지났지만 큰 상처없이 출고때 그대로 옥체를 보존하고 계시죠. 그런데 지난 주말에 큰 일이 날뻔 했습니다. 요즘 가족을 데리고 주말이면 시간 나는대로 어머니가 계신 시골집에 갑니다. 시골집에 가면 아이는 호스로 물을 뿌리고 젖은 흙을 가지고 놉니다. 원래 아이들은 흙장난을 좋아하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는 옷 버린다고 어머니가 그렇게 하지 말래도 하루종일 흙을 가지고 놀았더랬습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했죠. 그 평화로운 시간이 긴장감으로 팽팽해진 한 순간이었죠. 아들 녀석이 마당의 진흙을 뭉쳐서 차 본네트에 올린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어디서 가져온 막대기로 그 진흙더미를 문지르고 있었어요. 우샤인 볼트보다 빠르게 다가가서 막대를 뺏었습니다. 평소 소파에만 붙어있던 아빠의 날렵한 모습에 아들은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멍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왜 이러슈?"


일단 애 엄마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대략 보고하고 아들을 혼내게 했습니다. 저는 부상자를 먼저 돌봐야 하니까요. 대충 물 뿌리고 흙을 치우니 괜찮더라고요.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죠.


그런데 오늘 아침, 주차장의 그늘 아래에서 이 상처를 보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지난 주의 그 상황과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괜찮았거든요. 생각해보니 그 날은 햇살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얄미운 아들의 얼굴이 제 머리속에 가득 찰 즈음에 갑자기 씌익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저 스크래치가 이뻐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제가 왜 어려운 형편에 좋은 차를 샀을까요?

가족과 아름다운 시간, 행복한 시간을 늘리고, 함께하기 위해서가 큰 부분 아닐까요. 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차에 생긴 저 생채기는 지워야할 상처가 아니라 추억의 한 장면을 기억하게 할 기록물이 되는거죠. 만약 제가 예전처럼 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줘 패고 다음 날 없는 시간 쪼개 서비스센터에 가서 더 없는 돈까지 마련해 깔끔하게 도색까지 했다면 저 순간의 추억도 아마 사라질 겁니다. 아마도 아이 머리 속에 아빠한테 죽도록 맞은 나쁜 기억만 남아있겠죠.


어느 햇살 좋은 날, 어머니는 마당 의자에 앉아 볕을 쪼이시고, 아이는 물 호스를 들고 이리저리 물을 뿌립니다. 흙덩이를 손으로 주무르고 여기저기 바릅니다. 아내의 눈은 아이를 쫓고 있구요. 저는 그 모습을 아련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 순간이 저 본네트 위의 긁힌 자국에 박제되었습니다.

차를 사고 아무 상처가 없는 출고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거기에 가족의 기억, 추억을 새겨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혹시 오늘 아내가 후진하다 범퍼가 살짝 긁히더라도, 아이가 문을 콱 열어서 문콕이 생기더라도 웃어주세요.


'새 차'가 '우리 차'가 되는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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