学而时习之 不亦说乎。
说 는 shuo가 아닌 yue로 읽습니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구절이 논어의 시작입니다. '학이'편이라는 말이 바로 이 구절의 첫 두 글자를 가져온 것이지요.
学而 : xue er, 슈에 얼
學而 : 학이
아주 익숙한 말이면서, 논어를 우습게 보게 만드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글자도 쉽고,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구절 자체도 만만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논어를 처음 접했을때, 2시간 만에 한 권을 다 읽었던것 같습니다. 한자빼고, 한글 풀이만 쭉 보면 절대 많은 양이 아니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 상태에서 보는 논어는 쉽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우리가 '학습(學習)'으로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보통 학습(學習)이라 쓰고, 학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지요. 정규학습, 자율학습, 자기주도학습 등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논어에서 말하는 학습의 의미로 따지자면 이상의 학습들은 모두 진정한 학습이 아닙니다.
学(學) : (배울) 학 / 이론, 학교
习(習) : (익힐) 습 / 실습, 직장
배우고, 익히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즐거움이 있다 했습니다. 한 쪽에 치우치거나 한 쪽만 하는 것은 학습이 아닌거지요. 그리고 '학'과 '습'을 병행해야 기쁨이 있다 했습니다.
学(學)만 하는 것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유희' 만을 하는 것입니다. 무선 기술을 연구로만 했다면 지금 우리 손에 스마트폰이 쥐여지지 않았겠죠.
习(習)만 하는 것은 '시키는 일만 하겠습니다'를 이마에 새기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빠르게, 정확하게만 할 수 있을테니까요. 만약 20년 전의 타자수가 习(習)만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당 1,000자를 칠수는 있었겠지만, 직업을 잃었을 것입니다.
논어의 첫 장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有朋自远方来 不亦乐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 구절은 북경의 관문인 수도공항에 들어서면 천정에 쭉 걸려있습니다. 중국에서 올림픽, APEC 정상회담 등 큰 행사를 하면 항상 걸리는 구절입니다. "Welcome my friends"로 번역되더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현실에 파묻혀 살다보면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를 가질 수 없죠. 조만간 한 번 보자했던 친구를 언제 봤던가요? 다음에 밥 한 번 먹자고 했던 이전 동료와 식사는 언제 하셨나요? 참 쉽지않죠.
이 구절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요?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내부에서 승진한 CEO와 완전 다른 부분에서 날아온 CEO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다를 겁니다.
논어 첫 장의 마지막 구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제 좌우명이기도 하지요.
人不知 而不愠 不亦君子乎。
(인불지 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에는 군자에 대한 내용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아마도, 공자가 이상적인 인간을 '군자'라 칭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논어를 현대식으로 잘 팔리게 제목을 뽑는다면, 아마도 '군자가 되는 법'이 아닐까요?
군자에 대한 많은 구절 중에서도 이 구절은 제가 군자의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미생'이란 만화에서 '윤태호 작가'는 이 구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일을 한다. 회사에 나왔으니 일을 한다.'
당연한 말이고, 저게 뭐가 어렵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 앞에 생략된 부분을 붙여 넣으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평가에 무관하게),
(상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힘들어지더라도),
꼭 해야 될 일이라면, 그 일을 우리는 그냥 해왔을까요? 저는 자신있게 'Yes'라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저에게 이 구절을 해석하라 한다면 이렇게 해석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주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이 군자다."
바로 이런 사람이겠죠.
항상심(恒常心)을 가진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가진 사람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오른 사람.
미생에 이 구절과 반대의 장면이 나옵니다. 바둑을 배우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A: 너 손 좀 보자.
B: 왜?
A: 바둑 두는 사람은 손이 중요해. 바둑 TV에 손만 나오잖아.
B: 사범님이 그러셔?
A: 아니.
B: 그럼 누가 그래?
A: 내가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얼굴이 발개졌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렇게 공자님 말씀, '논어'에서 가장 유명한 첫 장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이 장을 제 회사생활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이 장을 제 나름대로 요약해보니 이랬습니다.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항상심을 가지고 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