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언영색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제일 모르고 있을 깊은 뜻

by 현실컨설턴트


巧言令色 鲜矣仁。

(巧言令色 鲜矣仁: 교언영색 선의인)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에는 인이 부족하니라.


글자도 7자 밖에 안되고,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교언영색' 입니다. 시험에도 자주 나오는 사자 성어라 그 뜻을 모르시는 분도 드물겁니다. 조금 생소한 것은 논어에서 이 구절이 7글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대부분 巧言令色(교언영색)만 알고 계실 겁니다.


먼저 익숙한 이 네글자부터 보겠습니다. 뜻글자인 중국어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먼저 巧言(교언)부터 볼까요. 巧(교)자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묘하다, 정교하다, 능하다, 날래다, 꼭 맞다, 재치 있다, 영민하다, 실속이 없는

생각보다 나쁜 뜻이 아닙니다. 현대의 능력있는 사람의 정의가 다 들어있어 보입니다. 여기에 言(언)을 붙이면 어떤 말들이 만들어질까요?

교묘한 말, 정교한 말, 말하는데 능하다.

혹은, 때에 따라 재치있게 꼭 맞게 하는 말, 그러나 실속이 없는 말.

스펙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교언하는 이가 현대의 능력있는 사람 아닌가?

회사에서 상사에게 보고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때에 따라 재치있지만, 실속이 없는 말이 난무하는...

숫자를 유리하게 꾸미고,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令色(영색)은 더 절묘합니다.

令(영)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명령하다, 지시하다, ~을 시키다

色(색)이 여기서는 顔色(안색, 얼굴색)을 뜻하니 令色(영색)은 '얼굴색을 시켜서 바꾼다'는 뜻이 됩니다. 희노애락을 그냥 느끼는대로 얼굴색에 표현하지 않고, 머리가 시켜서 그때그때 바꾼다는 말이죠. 절묘한 표현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令色(영색)은 힘이 생기거나 없어지면 바로 태도가 바뀌는 행위나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에서 유래한 것인지, 우리 나라말에도 '얼굴을 바꾼다'는 표현이 있죠. 이런 분들 저녁 뉴스마다 보고 있고, 인사 발표나도 많이들 출몰하시죠. 어떤 분들은 얼굴색만 바뀌는게 아니라 목에 근육도 생기시고 하잖아요.


지금까지는 익숙했던 네 글자를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앞의 네 글자보다 뒤의 생소한 세 글자를 더 오래 노려 봤습니다. 일단 낯설었고, 논어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모든 글자를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鲜矣仁(선의인),

일단 말이 잘 안됩니다. 보통 矣(의)가 어조사로 마지막에 놓여야 하는데, 떡하니 중간에 놓여 있습니다. 찾아보니 강조를 위한 도치랍니다. 어묵 이름인줄로만 알았던 鲜(선)을 강조하기 위해 도치했습니다. 원래 仁鲜矣(인선의)라 합니다. '어진 것(사람)이 드무리라' 이렇게 되는거죠.

딱 봐도 仁(인)이라 하면 道(도), 義(의), 禮(예) 등과 함께 공자 사상의 기반 아닙니까. 그런데 왜? 어째서? 어묵 이름으로나 쓰이는 鲜(선)을 '드물다'는 뜻으로 강조하며 사용했을까요? 물론 공자님께서는 이 鲜(선)을 뒤에도 많이 사용하십니다.


왜 '드물다'고 했을까요? '없다'는 표현을 왜 쓰지 않았을까요? 공자님은 우유부단하신 분일까요? 아닐겁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사신 분이신데요.

鲜矣仁(선의인)에 초점을 맞추고 전체 구절을 다시 보면, 교언영색 하면 무조건 어질지 않다는 게 아니란 말이 됩니다. 드물지만, 교언영색해도 어질 수 있다는거지요.


이 부분에서 저는 교언영색의 해석을 둘로 나누어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행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언영색하는 사람 중에 어진 이는 드물다.

즉, 교언영색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상황에 따르거나, 때를 기다리는 교언영색이 있을 수 있는거죠.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비추어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언영색 하는 것이 어진 행위일 경우는 드물다.

살다보면 그럴 수 있다는거죠. 학생일때 '교언영색'이라는 사자성어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색을 바꾸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흔 즈음에 이 구절을 다시 봤을 때는 '과연 교언영색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라 중얼거렸습니다. 평생 한 번도 교언영색 안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한신>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그는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일으킨 개국 공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별 것도 아닌 주제에 칼을 차고 다닌다'며 시비를 거는 동네 건달에게 수모를 당했습니다. 시장통에서 그들의 다리사이로 기어다니는 창피를 당합니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형님'이라고 '교언'도 하고, '웃는 얼굴'을 하며 '영색'도 했을 겁니다. 겉으로 보면 교언영색하는 사람이지만, 전체로 보면 숨어있는 어진 사람인 것이지요.

또, 이 상황을 그 시점만 보지 않고 한신의 인생 전체로 늘려보면 잠시동안은 교언영색을 했지만, 그의 인생 전체적으로는 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 사건도 지금은 인내와 초인적 기다림의 상징이 되어버리죠.


며칠 전, 제가 일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좋은 뜻으로 전무님이 다녀 가셨습니다. 물론 선한 의도로 오셨지요. 제가 그 날 어쨌을 것 같습니까? 마음을 그대로 얼굴에 보이고 있었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표정이었겠죠.

밥 먹으면서 그랬습니다. "전무님, 프로젝트에 한 달에 한 번은 와주셔야 돼용. ㅎㅎㅎ"

교언영색의 매뉴얼이죠. 그렇다고 누가 저를 욕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그런 상황을 점점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진심으로 반갑고, 오시기를 기다릴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야겠죠. 예를 들면, 그 분에게 배울 점을 찾고, 그래서 배우고... 쉽지는 않겠지만.


아!, 그리고 반대로 여러분이 부하 직원을 보면서 속이 터질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죠.

저 분은 지금 어진 이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저 분의 전체 인생을 보면 지금 잠깐 교언영색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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