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스미스는 틀렸다
“이 나무 기둥을 북문 앞으로 옮기는 자에게 금전 10개(十金)를 주겠다.”
도성 남문 앞에 커다란 벽보가 붙었습니다. 그 옆에는 벽보의 내용처럼 긴 나무 기둥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금전 10개라는 큰 보상에 비해, 해야 할 일은 너무 쉬웠기 때문입니다.행여나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에도 나무 기둥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다음 날 상금은 배가 되고, 며칠이 지나자 5배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무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섣불리 나무를 옮기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벌을 받을까 두려워해서였죠. 그때 건장한 한 남자가 나섰습니다. 수많은 눈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나무를 번쩍 들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닙니다. 나무 기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북문에 도착했고 고위 관리로 보이는 사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금전 50개를 그 남자에게 건넸습니다.
상앙(商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명재상이었고 진시황제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상앙은 법치주의를 표방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책을 적극 추진하여 당시 진나라 왕이었던 효공(孝公)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답게 법의 제정이나 시행에 매우 신중한 면모를 보였는데, 이 이야기도 그런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후대에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고사로 알려지게 되죠. 풀어쓰면 ‘나무 옮기기로 믿음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관직에 등용된 후, 어렵게 왕의 신임을 받게 되자 상앙은 자신의 정치철학인 법치주의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죠. 법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백성들이 나라를 믿고 잘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이 그 법을 우습게 알거나 잘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결과가 이목지신(移木之信)이었습니다. 이목지신(移木之信) 이벤트 후에 그는 진짜 법령을 발표합니다. 백성들은 이제 국가가 내건 약속은 불합리해보여도 지킨다는 것은 어렴풋이 믿게 되었지만, 새로 선포된 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였습니다. 법조문 내용이 너무 엄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행 일 년 동안에 새 법령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시범 케이스’죠. 때마침 그때 태자가 법을 어깁니다. 상앙은 속으로 ‘찬스’ 했겠죠. 그리고 법에 따라 태자의 태부(太傅)를 참형에 처하고 태사(太師)는 칼로 이마에 글자를 새깁니다. 백성들은 겁이 덜컥 났겠죠. 태자의 최측근과 스승까지 엄하게 벌을 주니까요. 십 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법에 익숙해져 오히려 만족스러워했고, 태평성대의 시그니처인 ‘남의 물건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으며, 도적들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력한 제도의 힘으로 백성들의 살림살이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제가 내린 시스템의 본질은 딱 두 가지입니다. ‘통제와 유도’입니다. 시스템은 통제를 통해 틀 안에서 일하게 하거나, 인센티브를 줘서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제는 어기면 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되고, 유도를 따르면 인센티브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앙의 고사에서 법령이 통제에 해당되고, 이를 어긴 태자는 벌을 받았죠. 반면 나무 기둥을 옮기는 것은 유도에 해당되고 그 일을 수행한 남자는 50개의 금을 상으로 받습니다. 제 직업이 컨설턴트이다 보니, 시스템으로 한정했지만 사실 통제와 유도는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법과 세금같은 것이 대표적인 통제와 유도책이죠.
저는 컨설턴트니까 사회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제가 잘 아는 회사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큰 회사나 작은 회사나 세상의 모든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이 모여 있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한 나름의 '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하는 방법'을 컨설턴트는 '프로세스'라 부릅니다. 프로세스는 항상 입력과 출력을 고려해 정의 됩니다. 제가 고객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면 주로 하는 일이 이 프로세스를 정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프로세스만 잘 만들면 회사는 잘 돌아가는 걸까요? 아무리 프로세스가 정확하고 자세하게 정의되어 있더라도 사람들이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입력, 프로세스, 출력이라는 프로세스의 기본 3요소 외에 사람들이 프로세스를 지키게 만들 통제와 유도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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