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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브라 공장

최악의 유도와 최고의 유도

by 현실컨설턴트

"지금은 약간 이런 상황이야. 이빨이 너무 아파. 충치가 심해 신경이 상한거지. 회의를 해서 결론을 이렇게 내려. '이빨을 잘 안 닦아서 그런거야' (사실 이건 원인이지 결론이 아냐) 신속하게 조치가 내려와. 앞으로 하루에 세 번, 시간 맞춰 이빨을 꼼꼼히 닦는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어. 너무나 맞는 말이거든. 그러고는 다음날부터 관리를 해.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인별, 팀별 완료율과 진척율을 보고하래. 신호등도 만들어 부쳐. 당연히 이빨은 계속 아프겠지. 조사해 봤더니 두 번만 닦는 놈도 있고, 3분 닦으랬는데 2분만 닦은 불성실한 놈도 있어. 자아 비판을 시켜. 그리고 횟수와 시간을 지킬 보완책과 KPI를 만들고 관리해. 더 혹독하게 갈구는 건 덤이야. 상황이 좋아졌을까? 이빨은 더 아파. 하지만 다 괜찮다고 해. 참고 숨기다 도저히 못 참아서 문제가 불거져.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 방향이 잘못됐다 했을까. 조치사항은 더 할게 무궁무진했어. 치약을 너무 많이 짜서 그래. 정량을 정의하고 지키도록 하자. 짜는 순서가 틀렸어. 치솔 뿌리부터 짜야해. 마지막에 물을 묻혀서 불소가 죽었어... 수 백 개가 더 나왔어. 관리할 항목은 많아지고 과로사하는 관리자가 생겨. 이게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야. 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아무도 이빨 뽑자는 얘기는 안하는거야?"

양치질.png 화가난 상태에서 양치질하는 컨설턴트

먼먼 옛날 어느 고객사에서 일할 때 양치하다가 필 받아서 쓴 글입니다. 그 날은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여러 이유로 프로젝트 일정이 약간 지연되었습니다. 고객쪽 PM은 일정을 좀 더 타이트하게 관리해달라 요청했습니다. 엑셀이 열리고 컨설턴트들이 작성중인 과제 리스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예정 완료계획일과 예정 완료시작일이 필드로 만들어지고 스르륵 날짜가 들어앉습니다. 그 주부터 실제 시작일과 실제 완료일을 입력하라는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2주 정도 관리를 했죠. 그런데 몇 개 영역에서 다시 지연이 발생합니다. 더 타이트한 관리가 필요하답니다. 과제는 다시 세부 상세 과제로 쪼개졌고, 각각의 항목에 네 개의 기록해야할 날짜가 만들어집니다. 엑셀에 수식이 들어가고 세부 항목을 입력하고 상위 과제의 시작일과 종료일이 자동으로 계산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쉽게 지연하는 못된 마음을 못 먹도록 지연 사유를 넣으랍니다. 구구절절 지연 사유가 들어옵니다. 자신의 불성실함을 탓하는 자, 과제를 잘못 받은 불운을 말하는 자, 우주가 뒤틀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자. 지연 사연은 깊어졌지만 계속 지연이 나오자, 엑셀에 필드가 하나 더 파집니다. 제목에는 'Catch-up plan(만회 계획)'이 새겨집니다. 그 필드에는 항상 다음주 금요일 날짜가 들어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정이 맞아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고객사 PM은 드디어 관리가 된다며 흐뭇해했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요? 프로젝트 말미에 산출물을 까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집니다. 실제로는 더 지연이 되고 있었던 거죠. 날짜만 계획대로 실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생각보다 자주 우리는 왜 일정계획을 만들고, 그걸 관리하는지에 대해 망각합니다. 그건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계획대로 시간에 맞춰 일하기 위해서는 아니죠. 보이지 않는 손(https://brunch.co.kr/@kisern1/416)이라는 글에서 회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통제와 유도를 얘기했었습니다. 통제와 유도를 잘못 설계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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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투구하지 않는 직장 생활과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삶은 고행입니다. 즐겁게 컨설팅하고 기쁘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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