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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Oct 27. 2016

용사술 #2. 너는 누구냐?

나를 회사와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라

한 여자가 중병에 걸려 이 세상과 저세상을 방황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누구냐?”
“저는 쿠퍼 부인입니다. 이 도시 시장의 안사람이지요.”
“네 남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제니와 피터의 엄마입니다.”
목소리는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물었다.
“네가 누구의 엄마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선생입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너의 직업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매일 교회에 다녔고, 남편을 잘 보조했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결국 여자는 다시 이 세상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병이 나은 다음 그녀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앤소니드멜로〈, 개구리의기도〉중에서


 비행기에 탑승하면 승무원이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있습니다. 비상착륙 시 산소마스크 착용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송을 자세히 들어보면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동반자가 있을 경우에는, 먼저 착용하신 후 도와주십시오.


승무원은 어린 자녀나 도움이 필요한 동반자가 있어도 반드시 먼저 자신부터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연약한 아이와 도움이 필요한 노인부터 먼저 착용하게 해야 할 거 같은데 나를 먼저 챙기라는 겁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도 '나' 다음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선 내 몸이 멀쩡해야 대처 능력이 부족한 주위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을 돌아보면 이와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지쳐 쓰러지더라도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런 생각으로 자신은 돌보지 않고 가족을 위해 온몸을 내던집니다. 그런데 내가 지쳐 쓰러질 지경에서 과연 내 가족을 잘 돌볼 수 있을까요? 그러다 진짜 쓰러지기라도 하면 도움은 커녕 오히려 가족에게 해만 끼치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요? 정말 가족을 위한다면 내가 온전한 것이 먼저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혼동은 직장에서도 일어납니다.


몸을 불살라서라도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겠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덜컥 쓰러집니다. 앰블런스에서도 구급대원 붙잡고 내가 없으면 회사 안 돌아간다고 진상을 부립니다. 회사는 아낌없이 불사른 그를 좋아할까요?




살면서 가장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은 '나'를 분리하는 일입니다.

그게 뭐가 어려우냐고요. 쿠퍼 부인질문을 다시 곱씹어 보십시오. 쿠퍼 부인과 다른 대답을 하실 자신이 있으신가요? 그렇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니까요. 어떤 이는 나와 가족을 동일시하고, 옆에서 보기에 승승장구 하는 이는 회사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간혹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시는 분도 있죠. 그리고 대다수사람들은 가족과 직장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삶을 삽니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인생에 잔잔한 물결이 일기 시작할 때 온전하게 '나'를 분리해내진 못한 사람은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 날은 정말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한 주식의 최종가에 펀드의 출금액이 육천만 원이 될
것인지, 삼천만 원이 될 것인지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주식의 최종가가 84,700원 이상인 것이 조건이었는데, 85,300원으로 마감되어 기적적으로 육천만 원을 탔습니다. 펀드 투자를 해보신 분들은 어떤 상품인지 금방 눈치챘을 겁니다. 이 상품은 ELS라 불리는 주가연계 증권인데, 보통 이자의 기준이 되는 두 개의 주식을 선정하여 특정일의 종가를 기준가로 정합니다. 그런 후 만기일에 그 기준가의 몇 %이상 두 개의 주식 종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에 약속한 이자를 더해 상환하는 형태입니다. 만약 그 하한선 이하로 둘 중 하나가 떨어질 경우, 낮은 주식 가격을 기준으로 원금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한선이 25%이고 기준가가 각각 10만 원인 두 주식을 대상으로 한 ELS가 있다고 칩시다. 여기에 천만 원을 가입하면 만기일에 두 주식가가 모두 75,000원을 넘을 경우, 천만 원에 연간 10% 정도의 이자를 더한 금액을 돌려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74,900
원에 마감되고 나머지 하나가 10만 원을 훌쩍 넘었더라도 749만 원만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는 위험성이 낮지만 불황으로 경기가 불확실할 때는 위험성이 매우 큰 상품입니다.

우리 삶도 이 ELS처럼 가족과 직장이라는 주식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살다 보면 때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그중 어느 한쪽에 힘을 쏟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한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이때 제대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점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삶이 평온할 리 없습니다. 늘 문제와 잡음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나마 어느 시점에서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행일 겁니다. 문제는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쳐서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마치 ELS처럼 하한선을 넘어버리면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임원이 퇴직 후 자살했다거나, 누가 봐도 부러워 할 사람이 갑자기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소식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입니다. 당시에 이 ELS 상품은 무조건 이익이 나는 구조였기에 모두 쉽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금융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나자 갑자기 변동성이 커졌습니다. 우리 인생도 예상치 못한 변동과 굴곡을 겪게 됩니다. 어찌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인생에서 나,
가족, 직장의 균형을 정확히 맞추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처럼 좌우로 조금씩 흘들리며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분리된‘나’라는 존재가 가족과 직장이라는 객체의 중심에서 균형을 유지해주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면,

먼저 쓰세요. 그리고 나서, 가족을 챙기고 회사에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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