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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컨설턴트 Feb 28. 2019

성공한 아빠보다 즐거운 아빠

고속승진하는 모습보다 즐겁게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자.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을 꼽아보라 하면 두 가지 일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건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도, 승진을 했을 때도, 인센티브로 돈을 왕창 받았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대리시절 이었습니다. 회사생활하면 귀에 피나도록 듣는 생산성 향상에 대한 업무 지시를 받았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패턴을 분석해서 표준화하는 작업을 1년 정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리로서는 꽤 훌륭한 성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의 성취가 떠오르는게 아닙니다. 떠오르는 기억은 그 다음입니다. 그 일이 일단락되고 몇 명이 다시 그 과정을 정리해서 책으로 냈습니다. 운좋게 책이 좀 팔렸고, 인세로 천 만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10년도 지난 일이니 꽤 큰 금액이었습니다. 돈으로 나누려고 하다가, 나누고 보니 개인에게 큰 금액이 돌아가지 않을 듯해 의논을 했습니다.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자. 그래서 그 돈으로 부서원과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그 동안 우리 회사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때 같이 여행을 갔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팀도 해체되었지요. 그런데 지금도 삼삼오오 따로 만나 술 한잔 하면 그때 그 여행 이야기를 합니다. 더 뭉클하게 만드는 일은, 그때 따라왔던 꼬마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서 그때 일을 기억한다는 겁니다. 그때 아빠 회사 참 좋았다고. 아직도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도 말이죠.


두 번째는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직도 저는 회사에서 제주도 여행의 추억을 최대한 자주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손톱만큼이라도 재미있는 방법을 찾아 일을 진행하려 고민합니다.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에서 "조금이라도 재미있게"로 회사생활 철학이 바뀐 건 꽤 오래되었습니다.

재작년에 12명 정도 팀으로 구성된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딱 놀아나기 좋은 규모지요. 3명씩 나누면 4팀이 만들어집니다. 토너먼트가 가능한 최소의 규모죠. 이 하늘이 준 기회를 흘려버리는 건 죄악이죠. 6개월의 프로젝트 기간동안 많은 경기를 했습니다. 스크린 야구(한국에는 3가지 브랜드의 스크린 야구가 있습니다), 족구, 실내양궁, 보트경주. 처음에는 뭐하는 시츄에이션이지? 하던 팀원들이 몇 번 하고나니 대회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토너먼트의 묘미죠.

그러던 어느 날 티타임 시간에 한 분이 아침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6살짜리 애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앉아 있더라는 겁니다. 옷까지 입고 말이죠.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따라 나오더랍니다.

아빠: "00야, 어디가니?"

아들: "아빠랑 같이 회사갈거야."

아빠: "아빠 맨날 회사가서 힘들게 일하는데, 00도 가서 힘들게 일할거야?"

아들: "거짓말, 아빠 회사가서 놀잖아. 맨날 운동복 가져가면서..."

12명의 아빠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약간의 뭉클함을 느끼면서.


어느 초등학교에서 조사를 한 적이 있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30명의 아이들 중 2명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 형에게 묻습니다.

"형아, 학교가면 좋아?"

"유치원때 즐겨라. 초등학교 입학하면 8시에 일어나야돼."

옆에 있던, 4학년 사촌누나가 씩 웃습니다.

"3학년 넘어가면 코피터져."

울상이 된 막내가 고등학교 다니는 사촌에게 묻습니다.

"초등학교가 천국이지. 중학생만 되어 봐. 햇볕도 못보지."

늘어진 체육복 입고 자다 일어난 삼촌이 콧방귀뀌면서 말합니다.

"학교다니는 건 신선놀음이지. 취업준비 해봐."

갑자기 뒤에서 아빠가 삼촌 뒤통수를 치며 한 마디 합니다.

"놀때 실컷 놀아라. 회사가면 인생 종치는 거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모습은 성공한 아빠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일하는 것이 재미난 것이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빠의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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