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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웹소설 단편-원포인트 꽁트

by 기신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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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냥감이다.


한 사람의 증오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열 사람의 분노는 밤잠을 설치게 만들 정도로 공포스럽다.

백 사람의 적의는 세상에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무겁다.


그를 증오하고, 그에게 분노하고, 그를 향해 적의를 표출하는 자들은 이 세계 전부다.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가 아직 걸음마도 떼기 이전에 세계는 하나의 의지, 하나의 정부, 하나의 사람 아래 하나가 되었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나라와 민족, 세력과 종교는 하나로 합쳐졌고 모든 이는 단일 지배 아래서 평화와 번영을 노래했다.


세계의 지배자에게 증오를 그가 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그가 지배자에게 증오를 사게 되었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 계기는 그도, 지배자도, 이 세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극히 사소하다.


길을 가다 돌을 던져 맞췄을지도 모르고, 무심코 내뱉은 비난이 지배자의 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우연히 그를 본 지배자가 그날따라 속이 불편해 기분이 나쁜 상태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배자에게 증오를 샀다는 사실이다.

그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추격당하고 있다는 진실 그 자체다.


지배자에게 증오를 사게 되자 지배자의 측근과 친위가 그에게 분노했다.

그는 살기위해 도망쳤고, 정신을 차렸을 때 온 세상이 그를 잡기위해 날뛰고 있었다.


한 사람이 그를 증오하자 백 사람이 그에게 분노했고 온 세상이 그를 적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배자는 그를 세상에서 ‘삭제’할 것을 명령했다.


처음에 그는 두려움으로 온 몸을 떨었다.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는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그의 편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세상의 무게가 짓눌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세상을 적으로 돌린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그가 아닌 자가 되기로 했다.

이름을 바꾸고 모습을 바꾸고 생업을 바꾸었다.

그가 아닌 자가 되면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추적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세상이 그를 짓누를 일도 없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온 세상의 시선에서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이름을 바꾸고, 모습을 감추어도 누군가 그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도망치고 또 숨어도 그의 행적을 알아내는 이들이 있었다.

추적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는 한 마리 사냥감처럼 끝도 없이 도망가야 했다.


가끔은 누군가가 그를 도운 적도 있다.

드물게 그를 숨겨주겠다고 나선 이도 보았다.

지배자에 대한 반감으로 같이 도망치던 동행도 있었다.


세상은 그와, 그를 돕는 이 모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를 도왔던 이들이 학살당했다는 뉴스를 본 것은 그가 도주한지 3일이 지난 뒤였다.

은신처가 폭탄과 화염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본 것은 그가 빠져나온지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같이 차를 타고 달리던 동행은 그의 눈앞에서 흉탄을 맞아 즉사했다.


이제 이 세계의 누구도 그를 돕지 않는다.

그도 이 세계의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온전히 그는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서야 사냥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사냥꾼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냥감들을 세상에서 ‘삭제’해왔다.

한 사람을 소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육체적으로 파괴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이 있을 공간이 파괴되고, 함께 공유할 시간이 사라지며, 교류할 관계가 사라질 때 비로소 완전히 소멸한다.

때문에 사냥꾼은 사냥감의 장소를, 시간을, 관계를 파괴한다.


지금까지 늘 그렇게 사냥감들은 사라져왔다.

사냥꾼의 눈앞에 선 그도 지금까지 사라져온 사냥감들과 다를 바 없는 자에 불과했다.

그때, 그 순간까지는.


그는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다.

왜 그가 도망가야 할까?

단지 지배자가 그에게 증오를 품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그의 계가 온전히 파괴되었다.


이제 그의 존재 자체가 말살되려 한다.

이는 부당하다.


그는 저항했다.


사냥꾼은 당황했다.

지금까지 사냥꾼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저항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사냥꾼이 사냥감 앞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사냥감의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이 파괴된 뒤였기 때문이다.

희망도, 목표도, 근거도 잃은 자가 저항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냥감은 사냥꾼의 공격에 저항했다.

사냥꾼은 당황했고, 그 찰나의 흔들림이 프로 킬러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냥감이었던 그는,

사냥꾼의 죽음 앞에서 전율했다.


지금까지 그는 도망쳐왔다.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고, 사냥꾼을 처치했다.

그의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냥이라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는 사냥감이었다.

온 세계로부터 끝없이 추격당하던 그는, 한 순간 자신을 바꾸어 사냥을 시작했다.

그 순간, 온 세상이 그의 사냥감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다.


이제,

그는 세계의 지배자를 사냥하러 간다.

그는 진짜 사냥꾼이므로.


- 3줄 요약

한때 그는 사냥감이었다.
온 세계로부터 끝없이 추격당하던 그는, 한 순간 자신을 바꾸어 사냥꾼이 되었다.
그 순간, 온 세상이 그의 사냥감으로 변모했다. 그것은 그의 선택에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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