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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웹소설 단편-원포인트 꽁트

by 기신

문학소녀



어느 날 갑자기, 글이 그녀를 떠나갔다.

더 이상 그녀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도 떠나갔다.

처음 만난 것은 봄.
모든 것이 새롭던 그 때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 처음으로 다니게 된 장소, 처음 보고 만난 사람들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그 날도 그녀는 반은 신나고 반은 비명을 지를 듯한 기분으로 캠퍼스 안을 걷고 있었다. 길에선 벤드 하나가 공연을 신나게 벌이고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떠들어댔다. 정신없고, 산만하고, 생각도 못하고, 단지 남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던 시간이었다.
그 때였다. 누군가 그녀를 붙잡은 것은.

“너, 문학 좋아해?”

첫 선택.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왜 돌렸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때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많은 것이 역시 달라졌다.

그는 그녀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했다. 책을 읽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같은 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전혀 쓸모없는 짓을 하며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고, 아무짓도 하지 않으며 같이 풀밭에 주저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이 그녀에게는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단지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그를 보았다.
그가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주위가 온전히 빛나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빛 속에서 속삭였다.
“간직하고 싶어, 영원히.”
이 순간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쓰기 시작했다.
그와 만난 순간의 일을, 그와 보낸 시간의 일을, 그와 함께하게 될 앞으로의 일을.
정신없이 쓰고, 기록하고, 빈 종이를 채우던 그녀는 기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를 떠난 글은 낯설었다.

분명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와 손 끝으로 쓰여진 것인데도 그녀와 전혀 다른 독립된 개체라도 되는 것처럼 낯설고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살아있는 또 다른 생명 같았다.
그녀는 그 글이 ‘그’에 대해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서 빛나고 있는 것들은 ‘그’ 만이 아니었고, 그녀는 빛나고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이 빛은 처음부터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전에 기록으로 영원히 남겨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쓰고, 쓰고, 또 썼다.

한 번 빛나는 것을 발견하자, 또 다른 빛나는 것들이 눈에 보였다.
그 빛은 그녀를 끌어당겼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으며, 그 무엇보다도 눈부셔 눈이 아릴 정도였다. 황홀한 빛을 따라 그녀는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빛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그가 더 이상 그녀의 옆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빛나지 않았고, 그녀도 글쓰기를 멈추었다.

단지 그를 다시 만나기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단지 그녀는 그를 기다릴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열 달이 지나고, 다시 수 년이 지나도록 그녀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했고, 세상은 무채색으로 물들었다.
죽음을, 그녀는 생각했다.

최후를 맞이할 장소는 그를 처음 만난 장소가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계절은 가을이라 무채색의 낙엽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와 함께 뒹굴던 풀밭은 누렇게 죽어 있었고, 시끌벅적했던 공간은 온전히 고요했다.
빛나던 시절은 이미 끝나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적막 뿐이다.
문득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그때, 그 자리다.

그가 그녀를 처음 잡아 세웠던 곳이다. 처음으로 문학을 접하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마침내 빛을 볼 수 있었던 그 자리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녀는 단 한 번도 그 자리로 온 적이 없었다. 그와 함께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었고 그가 오기를 그녀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왜?

처음으로 그 자리에 다시 온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그녀는 기다려야 했을까?
그녀가 그를 찾아 나서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혹은 그녀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그가 아니었던 것일까?

바람이 불고, 낙엽이 흩어졌다.
흩어진 낙엽 사이로 ‘빛’이 보였다.
아무런 느낌도, 의욕도, 감각도 없이 죽음을 생각했던 그녀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다르다.
죽은 것처럼, 시체처럼 느껴지던 무채색의 낙엽들에 색이 입혀진다.
귓가, 볼, 목을 만지는 부드러운 바람.
모든 것이 생생하게, 겨울의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더더욱 찬연하게 빛나는 가을.

그 가을의 빛이 그녀의 망막을 적신다.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왔던 글.
그 글을 그대로 써내려가던 그 느낌.
그 글을 쓰던 순간.

그때처럼 세상은 생생히 살아 숨쉰다.
그때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때와 달리, 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찬란하도록 생생한 이 현실감. 모든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
온 세상이 빛나는 이 순간.
그녀는 쓰고 싶다. 이 세상을, 그녀를, 모든 것을.

어느새,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터질 듯한 울림이 그녀의 심장을 부풀게 만들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이 순간이었을지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빙긋 웃는다.
“쓰고 싶어.”

어느 날 갑자기, 그녀를 찾아왔다.
글이.



-3줄 요약

어느 날, 그녀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를 만난 후. 그녀가 글을 쓰지 않게 된 것은 그와 헤어진 후.
그녀는 그녀가 정말로 사랑했던 것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녀에게 다시 찾아왔다.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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