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에세이-데이트랜드

by 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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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당신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요.


추억은 때로 아주 편리하게 포장됩니다.

빛 바랜 종이가 그렇듯 상처는 세월 속에 희미해지죠.

남아있는 것은 옛 만남의 흔적과 아마도 미화되었을 회상 뿐이에요.


잊고 살던 끔찍한 갈등도, 피하고 싶던 당신과의 언쟁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던 사건도 이제는 흐려요.

마치 그때 일어났던 모든 일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짐짓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게 진실로 전부라면 애초에 당신과 헤어진적도 없을 거에요.


그러나 기억은 얼마나 시간에 마모되고 변질되나요?

이 모든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심장은 어느새 두근거려요.

떠올린 옛 일들은 너무 눈부셔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렸고 서로 양보할 줄 몰랐어요.

서로 조금 더 선을 알고 지켰다면 혹시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남은 마음의 흉터 하나를 매만지며 떠올립니다.


다시 만나더라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지 몰라요.

그렇게 된다면 이 추억조차 다시 참혹한 아픔으로 되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어리석은 일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거에요.


그럼에도 아직 당신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남아 마음을 아리게 하네요.


옛날의 일이 떠오르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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