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신 Oct 03. 2015

폭스바겐 7년 전쟁 이야기

기신의 기록세상

세계 자동차 업계가 요즘 폭스바겐 배기량 스캔들로 시끄럽죠. 

이 뒷배경에 폭스바겐 '오너' 일가의 7년 전쟁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 외신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포르쉐-피에히 가문 '7년 전쟁'…디젤게이트의 근본 원인>



폭스바겐의 지배구조는 독일의 기업사를 반영합니다.


일반적인 독일 대기업은 이런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전 설립 오너 일가+지방정부+은행, 거기에 노조 몫 이사가 기업의 인사 등을 감시하는 감사 이사회를 이루고,

경영진을 구성하는 경영이사회는 감사이사회의 통제를 받으며 실질적인 경영을 하죠.

폭스바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독일식 경영 모델이, 

사실 CEO 독주의 미국식 경영이나, 

집단 지배체제인 일본식, 

오너 경영인 한국식(혹은 중국식) 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경영 모델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모범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폭스바겐이 '오너'가 있고,

'오너' 일가가 마치 한국의 재벌가처럼 다투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까요?


이는 폭스바겐의 실질적 오너 가문이 '포르셰-피에히' 일가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폭스바겐은 포르셰 가문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포르셰의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히틀러의 의뢰를 받아 "국민차"를 개발하면서 시작된 기업입니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포르셰 박사의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폭스바겐에 엔지니어로 입사, 실력(아마 외조부의 후광도 있었겠죠)으로 감독이사회 의장까지 올라갔죠. 

아우디 같은 브랜드도 있지만 대체로 대중차 위주의 회사였습니다.


한편 포르셰 자체는 포르셰 일가와 사위 가문인 피에히 일가가 공동 소유하며 스포츠카, 슈퍼카 회사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의 아들 쪽 집안인 포르셰 가문과 딸쪽 집안인 피에히 가문 사이에서 여러 분쟁이 있었죠. 

분쟁 끝에 포르셰 가문과 피에히 가문은 포르셰 지주회사의 지분을 50:50으로 갖기로 타협을 보았으나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형, 에른스트 피에히가 자신의 주식을 중동 투자자에게 매각하려 했던 '에른스트'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분율에 급변동이 발생합니다. 포르셰 가문이 53.6%, 피에히 가문이 46.3%의 지분을 갖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이후 포르셰는 포르셰 일가가 주도권을 가진 채 타협의 조건대로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 차례 경영의 위기를 겪다가 폭스바겐과 합작해 시작한 포르쉐 카이엔 시리즈가 성공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됩니다. 


포르셰 가문의 장손, 볼프강 포르셰는 바로 이 수익을 바탕으로 2005년부터 폭스바겐을 적대적 M&A 하기 위해 주식 인수를 시작했죠.  그리고 2008년, 적대적 M&A를 선언합니다. 

호사가들 사이에선 피에히와 포르셰간 경쟁 때문에 발발한 전쟁이라는 얘기가 그때 이미 돌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즈음 일어난 세계 금융 위기로 포르셰는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포르셰가 폭스바겐에 인수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포르셰 일가의 지주회사는 폭스바겐 주식도 갖게 되었고,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은 단순히 입지전적 카리스마 리더가 아니라 주식까지 가진 오너 이사회 의장이 되었습니다(포르셰 주식은 이미 가지고 있었거든요).

물론 포르셰 지주회사가 폭스바겐 주식도 가지게 된 것이었으니 볼프강 포르셰도 폭스바겐의 주식을 갖게 된 셈이지만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피에히 의장에게 있었죠.


이후 피에히 의장은 경영이사회 쪽 CEO들을 갈아치우며,
GM과 도요타, 유럽 재정 위기와 미국 금융위기를 모두 헤쳐나와,
폭스바겐을 세계 1등 자동차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피에히 의장


그런데 올해 초, 피에히 의장은 또 다시 CEO를 갈아치우려 계획했죠. 

뭔가 마음에 안 드는게 있었나 봅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1위 판매량에 집착하는 피에히 의장과 당시 수익률을 중시하던 CEO 마틴 빈터콘 사이의 갈등이라는 얘기가 많았죠.

 
하지만 이번에는 폭스바겐 내부 감사 이사회에서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니더작센 주 정부, 노조, 그리고 감사이사회로 들어와 있던 볼프강 포르셰가 반대표를 던졌고, 패배한 피에히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8개월여가 지난 지금..
폭스바겐 스캔들로 당시 승리한 CEO 마틴 빈터콘은 물러나고,
다시 피에히의 사람, 마티아스 뮐러가 CEO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전기차나 수소차가 기회를 얻을지,
폭스바겐이 망할지는 불명확하지만,
피에히 전 의장이 다시 기회를 잡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식 경영이 꼭 완벽한 정답만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임금피크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