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에세이-데이트랜드

by 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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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났던 시절은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일 때였을지 모른다.


오래된 체제가 무너지고, 견고한 성채가 허물어지던 시절이었다.

이전에 진리로 믿어지던 것들은 조각났고, 사람들은 믿음을 잃은 채 서로를 배신하며 살아갔다.

누구도 앞으로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에도 당신은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밝게 보였고, 언젠가 이 난관도 끝나리라는 비합리적인 확신이 생겼다.

생은 한 번 뿐이기에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이 기억난다.

가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당신이 있기에 헤쳐나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나쁜 상황과 환경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나쁜 시절도 아니고,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 믿을 수 있는 나날이 왔다.

하지만 당신의 웃음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래서 내게는 더 이상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이제는 안다.

상황도, 미래도, 확신도 결국 사람이 주는 것이다.

당신을 잃은 뒤에야 알게 된 일이다.


당신을 만났던 시절을 그렇기에 실은 좋았던 때였을지 모른다.

삶에 그런 시절이 두 번 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생은 한 번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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