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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Jul 13. 2018

모퉁이

에세이-데이트랜드

한 구석, 모퉁이에 남아버린 공간이 있다.


화산재에 묻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버린 도시가 있다.

그 도시는 사람이 처음으로 문명을 세우던 시절 구획을 짓고 거리를 만들던 장소다.

이미 수천년 전에 그 도시를 만들었던 이들은 죽어 뼈조차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인적 없는 장소, 거리만이 남아 옛날 이곳에 사람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구획되어 빈틈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거리는 삭막하기만 하다.

그러다 모퉁이를 잠시 돌던 순간, 빈 공간이 보였다.


본래는 네모처럼 직각이 져 있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아마도 건설자도 짓다가 잊었거나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일지도 모른다.

아직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문명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신들의 도시’라고 불리웠던 장소가 문득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곳에도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인가 궁리하며 애쓰고 고민하던 이들이 남긴 흔적과 자취가 이 모퉁이에 있다.

때로 어린아이가 숨바꼭질을 하고, 혹은 숨겨야 할 비사와 범죄가 저질러졌으며, 때로 달리던 사람이 부딪쳐 넘어지기도 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수천년 뒤에 남길 도시도 후인에게 이렇게 보일까.


모퉁이에 어그러지듯 생겨버린 빈 공간을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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