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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Aug 13. 2018

죄책감

에세이-데이트랜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살아간다.


태고의 고원에 인간이 살던 시절, ‘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원에서 내려와 세상으로 퍼져나가며 사람의 문명은 시작되었다.

함께 살아가야 했고 때로 적을 물리쳐야 했으며 지배와 굴종의 굴레도 만들어졌다.

자유로웠던 인간에게 지켜야할 무언가가 생겨났다.


때로 이는 신의 뜻으로 불리기도 했고, 오래된 전통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으며, 제왕의 명령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사람의 지혜가 쌓이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구분이 생겨나면서 이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윤리’가 되었다.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는 일이 ‘죄’가 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하지만 살아가며 크든 작든 인간은 규범과 도덕과 법률을 어긴다.

다른 이를 해치지 않더라도 사회가 정한 굴레는 너무 촘촘해 부딪치거나 마찰을 일으킬 일이 다반사다.

그때마다 어릴 때부터 배워온 바에 따라 우리는 죄책감에 짓눌리게 된다.


그렇지만 고원에서 세상으로 나온 이래, 반드시 지켜야할 규범은 단 하나 뿐이다.

한갓 짐승에 불과했던 태고의 원인을 지금의 사람으로 만든 근본이다.

바로 타인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신이 준 규범이어서도, 오래된 전통이어서도, 국가의 명령이어서도 아니다.

당신이 짐승이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표지이기 때문이다.

홀로 살아갈 수 없었던 미물이 오늘날 이 대지를 지배하는 존재로 거듭난 이유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원의 정명을 지키는 한 결코 죄책감에 짓눌릴 이유가 없다.

다른 모든 법규와 도덕과 규칙은 사람들이 편리에 따라 만들어내고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반대로 이 단 하나의 규범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진실로 ‘죄’를 저지른 것이다.


바로 사람이기를 원하는 자신에게.


가끔 죄책감에 짓눌릴 때 시원의 규칙을 생각해보며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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