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신 Jul 22. 2019

가치(정복자,구문장)

씀-꽁트



가치_세계를 질주하던 ‘정복자’가 마침내 멈춰섰다.

이 세상에 대륙은 하나, 바다도 하나, 하늘도 하나다.
하지만 땅 위에 인간이 섬기는 신들과 이루고 있는 나라와 지배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바얀’은 세상에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이러한 형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이아 대륙의 북단에서 처음 몸을 일으킨 것은 그 때문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상을 전화로 불태우는 이는 드물며 바얀은 상식을 아는 평범한 유목민의 자손이었다.
언제나 폭풍은 밖에서 불어오는 존재다.

시작은 초원의 유목 부족이 섬기던 신전이 침략당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일가가 모두 순례를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바얀은 양을 치며 계절마다 초지를 오가는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하나의 신 아래 통일시키려던 신성제국의 기사들이 학살한 가족의 시체를 보았을 때, 바얀의 행로도 정해졌다.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이 비극을 멈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단순히 복수를 꿈꾸거나 두려워 포기했을 그 날, 어이없을 정도로 광오한 결의를 한 것은 바얀의 오만함일 것이다.
그러나 오만한 자들이 모두 다다른 죽음을 바얀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부족을 먼저 통일하고, 다음으로 초원을 일통하며, 나아가 초원 밖의 세상을 정복한다.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길을 바얀은 하나씩 건물을 쌓듯 밟아 나갔다.
보통은 가치없는 일이라 여기는 단순한 반복이 바얀에게는 성공의 비결이었다.

대륙의 서단에 자리한 항구도시에서 비로소 바얀의 말발굽은 멈췄다.
그때까지 불태운 도시와 학살한 군병과 휩쓸린 백성의 숫자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바얀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반복해서 자신이 정한 과업을 계속해왔다.

선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래 정복은 남의 것을 빼앗고 부수며 죽이는 일이다.
단지 바얀은 자신이 정한 목표와 가치를 일생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단 끝에 섰을 때, 바얀은 처음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혹시 다른 길은 없었을까.
이토록 무수한 피가 흘러야만 했던 걸까.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는 이미 늦은 뒤에야 찾아온다.

이제 정복을 끝낸 정복자에게 새로운 ‘가치’가 세워져야 할 때였다.

작가의 이전글 미소(슈론,대공전하의 사건수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