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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Jul 12. 2019

미소(슈론,대공전하의 사건수첩)

씀-꽁트


미소_죽음의 땅 위에서 본 미소가 슈론을 이 땅으로 이끌었다.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규칙을 땅 위에 세우는 계기다.
발리아의 권세가 서쪽 끝에서 동단의 장벽까지 미치게 된 이후 황제가 못할 것은 거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제1의 공훈을 세운 슈론에게 은상을 베푸는 일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슈론은 이방인이다.
세계를 이루는 ‘오러’를 극한까지 익혀낸 이유도 슈론에게 이 세계의 공기가 마치 이물질처럼 극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얻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장소도, 해내야만 하는 일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황이 강림해 죽음의 대지로 불리는 ‘로기아’로 오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아직 대전쟁이 끝나기 전, 작전을 위해 대륙의 서남단을 횡단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막 편성하여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던 기사단을 이끌고 마황의 강림지를 침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속도가 전투의 향방을 결정할 상황에서 슈론에게 선택지는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마수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삼림을 간신히 돌파하던 슈론이 개척민 가족과 마주한 것은 지금도 묘한 일이다.
사람이 없기에 오히려 미지의 풍요로운 땅이 많은 강림지로 수많은 개척민이 들어왔다.
그러나 하필 슈론의 기사단과 마주친 개척민은 그 가족 뿐이었다.

수많은 마수들이 밀어닥쳤고 슈론은 의도치 않게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무수한 목숨을 베고 또한 구했지만 그때 그 일가의 어린 딸이 보인 감사 인사는 기이하게도 수년 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내줄 듯 안달이 나 있던 황제에게 ‘강림지’를 원한다고 말한 것은 그때의 기억 때문이다.

물론 정작 강림지에 다다랐을 때로부터 지금까지 슈론은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땅을 흔쾌히 내준 황제에게나, 동의한 귀족 의회나, 혹은 슈론에게도 그 땅은 실로 문제만이 산적한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회는 늘 늦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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