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나의 로스쿨 생존기10

연재웹소설-2. 네가 오는 길 (4)

by 기신

<나의 로스쿨 생존기>


기신


2. 네가 오는 길 (4)


공부.jpg


미디어는 메시지와 프레임으로 세상을 주조하는 틀이다.


돈과 권력, 영향력을 가진 어떤 사람도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미디어가 전파하는 메시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시대는 격변하고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은 격변의 길을 가고 있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지.


예능은 그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속 성장하는 장르다.

물론 그런 이유로 예능 PD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었지.

그런 이유로 PD를 준비하는 사람은 아마 열의 하나도 없을걸.

단지 영상에 흥미와 의미를 동시에 담는 게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을 뿐이다.


그 날 내가 신림동을 가지 않았더라면,

친구를 굳이 그때 보러 가지 않았더라면,

혹은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 나는 한밤중에 자막을 편집하며 침침한 눈을 번뜩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밤중에 침침한 눈으로 법전과 낡은 교과서를 뒤적여야 하는 신세보다는 나을 것 같기는 하군.


“이야, 유지호 이 자식 성공했구나! 축하한다!”

“오냐, 이 축하는 내가 받아주마.”

“잘난 척 하기는. 이 커피는 네가 사라! 이야, 내 동기 중에 방송국 PD가 생기다니! 이거 진짜 멋진데!”


어차피 고시생에게 커피를 사라고 할 정도로 내가 몰인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처지가 어떻든 순수하게 동기의 성취를 기뻐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시기에 신림동까지 내가 온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투덜거릴 정도로는 속물이긴 했다.


“젠장, 그러고 보니 누구는 금수저에 방송사 PD인데 이 흙수저인 이 몸은 아직까지도 고시생이라니. 이리도 세상이 불공평한가!”

“오버 하지마. 그냥 2차 시험 아직 안 붙은 것 뿐이잖아. 올해 시험이 붙을 수도 있는 거고.”


1차와 2차 시험, 그리고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3차 면접.

사법시험. 친구가 치르고 있던 시험의 이름이었다.


시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수능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험이며,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여기는 시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시험은 이른바 ‘등룡문’이라고 불리는 시험이기도 하다.

개천과 같은 험한 곳에서 자라난 ‘한미’한 사람도 이 시험을 통과하면 등룡의 폭포를 거슬러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5백년 동안 시험이 유일한 입신양명의 수단이었던 나라다운 관습이지.


“그래봤자 고시생이지, 나는.”


문득 친구가 대꾸했다.

씁쓸하게 웃는 게 어쩐지 이상하게 보였다. 늘 여유롭기만 하던 녀석이 그때는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자신의 현실을 깨닫기라도 했을까. 나는 잘못을 바로 잡아주기로 했다.


“1차 합격생이겠지.”


사법시험은 객관식으로 이루어진 1차, 주관식으로 구성된 2차, 그리고 면접시험의 3차시험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 1차 시험을 합격한 응시생은 다음 해 1차 시험이 면제되도록 되어 있다.

마침 그 녀석은 작년에 1차를 합격한 후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처지였다.


“그래봤자 고시생인 건 똑같아. 넌 고시생이 뭔지나 아냐?”

“고시를 공부하는 학생 아냐?”

“천만에! 합격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고시생이지. 사람이, 너처럼 큰 배경을 갖지 못한 사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게 이 고시야. 하지만 합격하지 못하면 끝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게 고시생이라고.”


물론 21세기에 어울리는 발언은 아니다.



작가의 말 :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스타트업 창업이 대세죠. 물론 100에 1명만 성공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사실 고시생도 확률은 비슷해요. 사법시험 2만 명 중 1000명이면 약 5%거든요.
매거진의 이전글[웹소설] 나의 로스쿨 생존기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