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 장을 넘기다 그 구절을 발견했다.
옛날 처음 인간이 기록을 남기고 문서를 만들던 시절, 첫 페이지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점토판과 파피루스, 죽간은 하나로 이어질 뿐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새 물건을 꺼내들어야 했다.
같은 기록 속에서 다음 장이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은 한참이 지난 중세의 일이다.
종이 위에 문자로 담고 싶은 말을 눌러쓰고 잘 접어 한 권의 책으로 펼쳐낸다.
이 지난한 세월과 고단한 노력이 첫 장에는 담겨있다.
당신이 무심코 집어든 책 속에 숨겨진 이야기다.
모든 첫 페이지 뒤에 두 번째 페이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책의 첫 장을 한동안 넘기지 못한 채 이 구절을 쓰기 위해 흘러온 수천년의 세월을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