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아누는 아이를 낳을 때만 부족의 형태를 유지하며 개인으로 살아간다. 타 개체의 몸을 빌려 살아가는 수라는 어떤 사회에서든 기생하며 생존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에게 사회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본질이다.
용과 난쟁이, 요정을 비롯한 다른 종족도 모두 각각 종족의 특성에 따라 사회를 구성한다. 태초에 신들이 생명과 지성을 창조한 이래 이는 당연한 법칙처럼 여겨져 왔다. 경계를 넘어 ‘강림자’들이 도래할 때까지.
강림자들이 온 세상은 신들이 없는 세계였다. 혹은 신들이 있더라도 잊혀진 세계라고 추정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도 종교가 있고 신들의 행적을 적은 경전이 있으나 단지 도래한 강림자들이 살던 시기에는 이미 거짓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림자들은 신이 정하지 않아도 문명과 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는 단서를 던졌다.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때 본질은 우연히 드러난다. 이종족의 서로 다른 사회는 신이 정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육체, 다른 지성, 다른 수명과 특성이 최초의 ‘사회’간에 차이를 만들었다. 그 차이가 수많은 우연한 구성원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지금의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바꿔 말하면 통합할 수 없다고 믿었던 이종족들을 단 하나의 사회, 단 하나의 공동체, 단 하나의 국가 안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