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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검마,구문장)

씀-꽁트

by 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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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_고수의 세계에서 간격은 생사를 좌우하는 거리다.

언젠가 천하제일의 검객을 만난 적이 있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적과 싸울 자신이 있느냐고 우문을 던진 것은 단지 치기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검객은 내게 칼침을 놓는 대신 가볍게 주위에 원을 그려냈다.

이 원 안에 들어오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아주 가볍게 돌아온 현답이다.
검객의 간격은 바로 그 원이었을 것이다.

보통의 권사에게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간격은 두 주먹이 닿을 수 있는 짧은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거리조차 자신 있게 자신의 간격이라 선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필 포위를 당해 죽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지금 그때의 일화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 것이다.

그러나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 또한 어차피 죽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나는 원을 그렸다.
엉뚱한 행동에 포위하고 있던 적들은 당황해 잠시 멈췄다.
바로 그 틈이 내 숨통이 되었다.

어차피 나는 천하제일의 검객도 아니고 그 원 안으로 들어온다고 반드시 끝장낼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내 갑작스런 행동에 검객의 유명한 일화를 떠올린 자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잠시간 생겨난 빈틈을 치고 나는 직진했다.

이 직진의 간격이 사라졌을 때, 나는 포위를 뚫고 도주하고 있었다.

어쨌든 생사의 간극 속에서 삶을 간신히 붙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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