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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신 Aug 13. 2017

앙리 플랑타쥬네-서 : 화이트쉽 침몰 사건

기신의 역사평설-플랜타지넷 왕가 이야기


헨리 2세, 잉글랜드의 군주입니다.


플랜타저넷 왕가는 카페, 호엔슈타우펜과 함께 중세 서유럽을 대표하는 왕가로 수많은 역사책과 로망스의 주역으로 다루어져왔습니다. 

그 중심에 왕가의 시조인 헨리2세와 엘레오노르가 있는데..


사실 이 왕가의 스토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실로 중세의 막장드라마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사자심왕 리처드나 부인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가 더 유명하지만, 

고전 명작영화 "겨울의 사자" 주인공인 헨리 2세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꽤 막장스럽죠.


근래 십자군 대중 역사책을 사모은 김에, 

"서양 중세 가족 막장드라마"나 정리해볼까 합니다.

진지한 역사글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울 것 같네요.


일단 프롤로그는 '영국사'에서는 유명한 화이트쉽 사건부터 시작합니다.



[앙리 플랑타쥬네] - 프롤로그 



"The White Ship sinking"


1120년 11월 25일, 도버 해협에서 하얀 배 하나가 침몰했다.

화이트쉽 침몰 사건.


이 사건이 바로 오랜 기간 잉글랜드를 전화 속에 빠뜨리고, 결국 플랜타저넷 왕가가 시작되었으며, 종국에는 백년 전쟁으로 결말지어지는 오래된 옛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배에는 잉글랜드 왕 헨리 1세의 유일한 적자, 윌리엄 아델린이 타고 있었다.


윌리엄은 침몰하는 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말은 노르망디 공작령과 잉글랜드 왕국의 유일한 남자 계승자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헨리 1세는 노르만 바이킹의 후예답게, 왕성한 정열과 현실주의적인 책략으로 형제와 적들을 패주시키고 왕위를 굳건히 다졌지만, 정작 왕국을 계승할 후계자는 이제 없어졌다. 봉건주의 시대, 가문이 삶의 가치 거의 전부였던 이들에게는 삶 전체가 뒤흔들리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서자와 서녀들이 헨리 1세 슬하에는 즐비했다. 당장 계승자 윌리엄만 해도 이복누나인 서녀를 구출하려다 배가 전복되어 익사했고, 계승자의 죽음에 절망한 헨리 1세의 옆을 지킨 것도 서자들이었다.


하지만 중세 기독교 윤리는 이상하게 유연하면서도, 어떤 선은 절대로 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있었다.

바로 적자, 이른바 신의 축복을 받은 적법한 혼인에서 태어난 자만을 인정하는 제도다.

사실 따지고 보면 헨리 1세의 아버지, 정복왕 윌리엄도 적법한 혼인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교회를 통해 적자로 인정받았기에 노르망디 공작, 그리고 정복을 거쳐 잉글랜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헨리 1세의 나이는 51세.

중세의 짧은 수명과 불균형한 영양 상태, 나쁜 생활환경을 고려하면 새로운 자식을 바라기 어려운 나이였다.


실제로 이후 헨리 1세는 15년을 더 버텼고 재혼도 했지만, 새로운 자식을 얻지는 못했다.

이제 헨리 1세에게 남은 "적법"한 자녀는 단 하나.


전직 신성로마제국 황후이며 유일한 적녀인 마틸다였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에 새로운 혼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중세 막장 불륜 서스펜스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인 헨리 2세, 혹은 앙리 플랜타저넷의 이야기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s. 지도는 이야기의 진짜 주무대인 서북 프랑스(잉글랜드 이야기가 실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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