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간쯤에서

by 루미나

어느새 쉰한 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싶다.
어릴 땐 스무 살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눈 깜짝하니, 나는 주름이 살짝 보이는 중년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사이 내게는 남편이 생기고, 딸이 태어났다.

20대엔 취업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30대엔 결혼만 하면 웃음이 늘어날 줄 알았다.
그땐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 믿었다.
하지만
행복? 웃음? 그거 어디 있나요?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그 선택 뒤에는 더 큰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것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걸 알아차린 순간, 마음 한구석이 허탈했다.
그 감정은 ‘무력감’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오래 머물렀다.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채로.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게 내 무지의 결과였다는 걸.
한탄스러웠다. 그래서 배워야 했다.
남편을 알아야 했고, 육아를 공부해야 했다.
행복과 웃음을 찾으려면 내가 먼저 달라져야 했다.

그중에서도 육아의 벽은 정말 높았다.
허둥지둥, 좌충우돌.
엄마라는 이름 아래 매일이 전쟁이었다.
계획적인 ENTJ에게 ‘육아’는 미지의 세계였다.
예습도, 복습도, 답지도 없었다.
솔직히... 멘붕이었다. 완전 똥줄 탔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노트에 정리까지 했지만 실전은 교과서 따위는 몰라요~ 하는 냉혹한 세계였다.
그래도 아이가 내게 웃음을 줄 땐,
“아, 이래서 다들 애 낳는구나.” 싶었다. 진통제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녹록지 않았다.
애가 면 젖을 주라길래 기다렸는데,
울지도 않고 잠만 자는 딸.

“꼬집어서라도 깨워서 젖을 물려요.”

그게 말이야 쉽지?
방금 태어난 생명인데… 손끝 하나 대기도 무서웠다.
자칫 잘못하면 부서질 것 같아서.
아니, 누가 좀 대신해줘요!!

하루 종일 몸을 비틀며 얼굴이 터질 듯 울던 아이.
그 작은 몸이 아파도 아무 말 못 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친정엄마도 모르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기침을 멈추지 않아 병원 약을 먹여도 소용없던 날,
입술이 파래지고 꺼억꺼억 넘어가던 아이를 보며 숟가락을 들고 함께 울었다.
그건 어떤 육아서에도 없던 이야기였다.

TV에 나오는 육아법, 육아서의 문장들…
내 딸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낳으면 그냥 큰다면서요!
알아서 잘 큰다면서요!!!”

그렇게 TV를 붙잡고 울었다.
그래도 결국, 아이는 자랐다.
나도 조금씩 ‘엄마’로 자랐다.

그제야 알았다.
그 시절의 눈물은 나를 키우는 시간이었다는 걸.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결국 나를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