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의 최대 화두는 “잠”이었다.
잠이 줄어서 안 자는 건지, 자기 싫어서 안 자는 건지 이유는 오리무중.
자는 시간은 점점 뒤로 밀려났고,
내가 강요하듯 “이제 자!” 했다간?
그날 밤은 가출 각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타협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억울하지 않은가.
노사협상하듯,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아이가 이미 논리, 원칙, 기준으로 완전무장해 있었다.
한마디로 부모 머리 위에 있다.
나도 입담으로는 잘 안 지는 편인데, 얘 앞에선 밀린다.
저쪽은 “조금만 더 있다 잘게요.”
이쪽은 “안 돼, 지금 자야 돼.”
그리고 전쟁은 시작된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나 때도 TV 조금 더 보겠다고 켜놓고 자다 혼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TV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그 재밌는 세상, 나도 보고 있는데 애는 오죽하랴.
게다가 폰 너머에 친구가 있다.
나보다 자기 마음 잘 알아주는 친구가,
“야, 아직 안 자지?” 하며 손짓하고 있다.
그런데 “자라”니, 이건 거의 사회적 낙오 선언이다.
그 마음, 안다. 정말 안다.
하지만 부모라는 게 또 그렇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그리하여 충돌은 본격화됐다.
울고불고, 노려보고, 소리도 지르고…
처음엔 나도 질렀다.
'그래, 너도 당해봐야 알지!'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이게 점점 격해지더라.
역시 사춘기는 파이팅이 넘친다.
강에는 강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의 최후통첩이 날아왔다.
"나... 죽고싶어.”
누가 가르쳐준 건지,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찾아 쓴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모든 걸 리셋했다.
초기화 버튼을 누르듯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우리랑 다시 연결될 때까지 풀어보자고.
그리고 생각했다.
조폭이 나에게 뭘 시킬 때랑,
외할머니가 나에게 뭘 시킬 때랑 느낌이 다르지 않나?
아이에게도 사랑이 느껴져야 움직일듯했다.
그 후로 방향을 바꿨다.
'못하는 걸 지적하기보다,
그 마음을 먼저 알아주자.'
단, 지켜야 할 선은 단호하게.
‘안 되는 건 안 돼’
하지만 감정은 빼고 말하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이의 태도가 바뀌었다.
나의 지침을 따르고,
의논을 하고,
웃고,
해맑던 그 모습이 다시 돌아왔다.
아니, 사실 그 애는 그대로였던 것 같다.
단지 서로의 오해가 쌓였던 거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춘기란, 그냥 ‘레벨업 단계’ 일뿐이다.
우리처럼 성장 중인 아이들이,
조금 서툴게 ‘다음 스테이지’를 열어가는 것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다.
옳고 그름도 알고, 어른에게 버릇없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단지, 그걸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엔 경험치가 부족할 뿐.
결국 핵심은 이거였다.
1️⃣ 신뢰 –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기.
2️⃣ 소통 – 나랑은 다른 별에서 온 아이, 대화로 알아가기.
3️⃣ 배려와 조율 – 다름을 인정하고, 틀림이 아님을 알려주기.
그리고…
못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다.
어른들도 실수하잖아.
다음 날 다시 하면 된다.
우리에겐, 사랑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