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때문에 이게 이렇게 됐잖아!”
“아니, 엄마가 했었다고는 말했지, 했다고는 안 했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쯤 되면, 엄마라는 단어는 조사(助詞) 아닌가?
‘엄마’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호출될 줄 누가 알았을까.
처음엔 이 말들이 전부 나를 찌르는 가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정답은 노(NO)였다.
그건 가시가 아니라,
그 아이만의 감정표현 실습 중 발화음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나도 감정이 폭주 중이라고요, 엄마!
근데 어휘력은 아직 로딩 중이에요!”
청소년기의 전두엽은 아직 덜 완성됐단다.
기분은 널뛰고, 호르몬은 파티 중이고, 표현법은 배우지도 못했으니…
한마디로 ‘대략 난감’ 세트 완성.
이런 상태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건
결국 엄마의 반응.
가끔, 내가 평소에 했던 말을 아이 입에서 들으면 소름이 쫙 끼친다.
'헉, 이건 내가 접때 짜증 내면서 말했던 건데?! 내가 부정적으로 반응한걸 고스란히 복사해서 써먹는단 말이네.'
문제는,
나도 그걸 우리 부모님에게 배웠다는 거.
그분들은 ‘분노’와 ‘억압’의 장인들이셨다.
그런 내가 그 방식을 안 쓰려하니 속이 속이 아니다.
한마디로 용광로가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이 아이의 엄마이고,
성인이고, 어쩌다 보니 인생의 선배인데.
결국 답은 하나.
뼈를 깎는 자기 훈련.
말 대신 깊게 숨 쉬고,
폭발 대신 웃음으로 넘기는 기술.
솔직히 예상은 했지, 쉬울 리 없다는 거. 순리를 거스르는 건 쉽지 않지.
근데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정말.